보내고는 싶지만 안 들킬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 9편에 걸쳐 기숙형 사립 중학교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았다.
지금까지 정독하신 독자분들이 계속하고 싶었던 질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네 자식도 여기 보낼 거니?”
이에 대한 답이야말로 이 학교에 대한 나의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원한다면 물론이다. 하나, 우리 학교는 NO, 다른 기숙형 자율중학교는 YES다.”
실제로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보직에 따라 답이 갈린다. 교사들은 중립적인 입장이라면 행정실 선생님들은 긍정적이다. 이는 학교 체제에 불만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입장 차이라고 문제이다.
행정실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를 마주칠 일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보내면 출퇴근할 때 편하고 좋은 것이다.
반면, 교사들은 괜스레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일단 이런 작은 학교에는 과목당 선생님이 한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자식이 내 수업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평가를 정말 공정하게 할 수 있을까?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못 하겠다. 오히려 학생들이 편파적으로 느낄까 봐 내 자식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것만 같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내 아이의 이름이 나오거나 아이가 어울리는 친구들이 부정적으로 언급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동시에 자식 입장에서도 친구들 입에서 본인 부모님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나오면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꼭 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내 자식이 다니는 것 자체가 반대라는 뜻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보겠다.
“돌아갈 수 있다면 너는 이 학교에 다닐 거니?”
답은 완전 YES이다.
근무를 하면서 종종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내가 이런 학교에 다녔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학교폭력이 심하기로 소문난 중학교에 다녔다. 교실 문을 열면 담배 연기 때문에 앞이 아예 보이 지를 않을 정도였고, 화장실 문이 닫혀있을 때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무서워서 다른 층으로 향하는 게 일상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도 잘하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그 많은 비행 청소년들을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던 거 같다.
평범한 학교였기 때문에 교육과정 상에도 특별한 차이는 없었고, 진로 체험활동이나 학교 자체 특수한 사업도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고 성적만 높으면 허용되던 사회적 분위기였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가로 직행해서 혼자 밥을 사 먹고 영어 학원에 갔다가 수학 학원이 끝나면 막차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오면 숙제하느라 최소 1시 30분에 잠들어서 키도 안 컸고(지금도 매우 아쉬운 부분) 다음 날 학교에서는 조느라고 자주 혼났다. 3학년이 되어서는 전보다 더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공부를 하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한 나날들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했던 탓에 이른 나이에 교사가 된 건 인정하지만, ‘꼭 공부만이 정답이었을까?’라는 질문은 요즘도 가끔씩 든다. 19살에 사범대 원서를 쓰고 합격해서 휴학 한번 없이 복수전공도 하지 않고 졸업한 뒤 교사가 되었다. 합격과 동시에 ‘다 이루었다.’ 싶은 후련함도 있었지만, 그 후로 내가 교사와 맞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애초부터 연금이 나오는 기점인 10년을 채우는 게 목표긴 했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런 고민을 주변에 얘기하면 보통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일은 3년 정도는 해야 익숙해져, 조금만 참아.”
“1정 연수받고 오면 조금은 새로워질 거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 너무 의미 부여하지 마.”
나도 이제는 익숙해지고 싶고 연수 후에는 새로운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일에 의미부여 안 하면서 살고 싶다. 그냥 남들처럼 무던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주 듣는 말이 ‘4차원, 돌+I, 신기한 애, 이상한 애, 처음엔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어!’ 같은 것들이다. 하나같이 사회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과 어울리는 표현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교사는 잘만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이거 완전 서비스업이구나’ 싶었다. 반 아이들은 사춘기답게 서로 싸우고 다른 반 애랑도 싸우고 선후배랑도 싸우고 가끔은 다른 학교 애들과도 싸워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다. 부모님들은 전화로 본인 아이의 억울함을 토로하시고, 부장은 이 책임이 담임에게도 있다며 갑자기 날 지목한다.
가운데서 등 터지는 일이야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알고 보니 몸은 살려달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일 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밤에 잠을 자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깨서 엉엉 울 때가 있고, 내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서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전신에 두드러기와 수포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남은 흉터를 볼 때면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
정시 퇴근과 방학이 있는 교사가 세상 최고의 직업인 줄 알고 달려왔고, 월급과 연금만 제때 들어오면 어떻게든 맞춰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좋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나와 맞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진로와 관련하여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해봤더라면 더 넓은 시각으로 직업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나의 성향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기회가 더 있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학교나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아주 특별한 케이스다.)
하지만 기숙사에서는 끝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와 대학교 기숙사를 도망 나온 전력이 있기 때문에 감히 중학교 3년을 버텼을 것이라 얘기는 안 하겠다. 통학을 하는 형태로 10교시까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듣고 9시에 집에 도착하는 여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과 후 수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학교에 다닐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앞서 교사로 일하면서 느낀 힘든 점들을 언급했는데, 좋은 점 또한 나누고 싶다.
이런 특수한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과 주말 근무를 하고 방과 후 수업도 피할 수 없어 힘들었지만, 행운이라는 말은 진심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아이들을 통해 배운 것이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복잡한 가정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보니 가여운 마음이 참 많이 들었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활 태도가 불량한 것도 마음 아프고,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서 계속 돌발 행동을 하는 것도 안쓰러웠다. 반대로 매사에 무기력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아서 화가 날 때도 종종 있었다. 교사인 내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따뜻한 조력자가 되어주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나의 어머니가 전에 어디서 봤다면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는데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닌다.
서양의 어느 학자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단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모두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고,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건 아니다. 그럼 정신적 결핍 없이 성장하기 위한 진짜 조건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곁에서 지지해주는 어른이 딱 한 명’만 있으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한단다. 교사 입장에서 이 소식은 희망 그 자체다. 해체된 가정 아이들이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해서 학업 성적이 낮고, 그럼 또 사회에 나가서 적은 수입을 얻을 확률이 크다. 이 고리를 끊어내는 역할을 교사가 조금이나마 감당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렇게 말하니까 참 교사 같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뭔가 대단히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칭찬을 해주며 자존감을 세워주려 했고, 눈에 띄면 매점에 데려가서 맛있는 거 사주고 스몰토크를 나누는 수준이다. 막말로 대단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별 대단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대학생 때까지는 친분이 있고 이득이 될 만한 사람들만 돌볼 줄 아는 인간이었다. 교사가 되고 담임을 맡고 나서야 조건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손 내미는 마음이 생겼다. 사랑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참 많은데, 우리 사회는 남을 돌아보기에 다들 너무 바쁘다.
애들 크는 거 금방이다. 엊그제 입학했던 거 같은 아이들이 눈 깜빡하면 금세 졸업이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하자.
마지막으로 다양한 여건을 뛰어넘고 기숙형 자율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재랑은 같이 방을 쓰네, 못 쓰네, 기숙사를 나가네, 마네, 죽네 사네’ 하면서도 모든 방지턱을 무사히 넘겼다면 이제는 어딜 가서도 잘 견딜 것이다. 나처럼 고등학교, 대학교 기숙사에서 뛰쳐나가거나 최소한 군대에서 탈영은 안 하겠지.
우리 애기들, 정말 기특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