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놈은 된다
시골 학교지만 매년 명문고등학교에 한 명씩은 진학한다. 전교 1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의 전국구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고, 2등이나 3등은 외고 혹은 자사고에 간다.
하지만 어떤 해에는 단 한 명도 이름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 전교 1등은 원서를 쓰면 어디에나 갈 수 있지만, 내신을 생각해서 집 주변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5명 정도가 진학하기도 한다. 2명은 성적으로 선발하는 일반 전형이었지만, 나머지 3명은 저소득과 농어촌 특별 전형으로 원서를 냈는데 경쟁률이 매우 낮아서 합격을 했다.
그러니 옆집 아들이 기숙형 중학교에 가서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했다더라, 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길 바란다. 굳이 누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본인 자식이 특별 전형으로 합격했다는 말은 쏙 빼고 할 테니 말이다. 이런 제도를 모르는 많은 부모님들은 ‘걔가 거기 합격을 했다고? 공부를 그렇게까지 잘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그럼 우리 자식도 그 중학교 보내볼까?’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부에 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리 아이가 야무진 스타일인지 덜렁대는 스타일인지는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지표 몇 개를 소개하겠다. 초등학생 때 올림피아드나 공모전에 출전해서 다수 수상을 한 적이 있거나 초등학교 선생님이 “얘는 영재(혹은 천재)에요.”라고 진지하게 말하신 적이 있다면 약간의 기대는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 두 분 다 최상위권 수준으로 공부를 잘했으면 공부 머리를 닮아 아이도 괜찮게 할 것이다. (상위권까지는 어떻게든 끌어올릴 수 있지만 최상위권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여러분이 국가유공자 혹은 사회적 배려 대상이거나 농어촌 특별 전형을 쓸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성적으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럼 중학교 전체 내신 등수를 합산해서 전교 1등이어야 하는데, 그 말은 중학교에 들어와서 본 모든 시험에서 거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했다는 말이다. 입학 직후 본시험부터 전교 1등을 했을 정도면 원래 잘하는 아이가 입학을 해서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졸업을 했다는 말이다.
그럼 꼭 우리 학교에 와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보는 건 무리이고, 사실상 어느 학교를 갔더라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숙학교에 오면서 사교육을 받기에는 더 불리한 조건이었을 테니 그 학생 자체의 역량이 더 크지 않았을까? 타고난 머리와 바른 학습 태도, 그리고 공부 욕심이 삼박자를 갖춰야 가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느 학교든 전교 1등이면 명문고에 거의 간다. 꼭 우리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선생님들이 원서와 생활기록부를 잘 써줘서 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자율 학교답게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라도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교내 대회도 많이 진행하고 교과별 세부능력 특기 사항도 정성스럽게 써준다. 과학고 원서를 쓴다고 하면 수학, 과학 세특을 더 정성 들여 써주고, 예고를 쓴다고 하면 음악, 미술 세특을 더욱 신경 써 작성하는 식이다.
생활기록부 컨설턴트 담당 선생님과 장학사님께서 이 지역에서 이렇게 내용을 정성스럽게 양껏 써주는 학교가 없다고 칭찬하실 정도다.
미술 전공으로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매년 있다. 현재 지방에 있는 사립 예술 고등학교는 대부분 미달 수준이라서 원서만 쓰면 거의 갈 수 있다. 국공립은 경쟁률이 높지는 않아도 미달까지는 아니다. 내신 성적과 실기 성적을 합산해서 합격이 결정되는데 내신이 아무리 높아도 실기장에서 작품 완성을 못하면 안 되고, 내신이 너무 낮으면 실기를 만점 받아도 힘들다. 미달인 경우는 어떻게 하든 무조건 합격이지만,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영역이 적당한 균형을 이뤄야만 한다.
이 외에도 무용과 음악 전공으로 예술 고등학교를, 특기생으로 체육 고등학교를 준비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결국 다들 포기했다. 실제로 3달 준비해서 합격을 한 학생도 있었지만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학 갔다고 들었다.
예체능은 노력보다 재능이 차지하는 영역이 크고, 워낙 고된 길이기 때문에 정말 사랑하는 게 아니면 전공으로는 삼지 않았으면 한다. 성적이 애매해서 갑자기 예체능으로 틀어버리는 경우도 많은데, 결국 좋은 대학교는 예대나 체대도 상위권이어야 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시 준비를 해도 결국에는 성적 때문에 요리나 간호 쪽으로 틀어버린 경우를 적지 않게 봐왔다.
적당히 좋으면 취미로 해도 충분하니 함부로 덤비지 말 것.
실기 준비는 학교에서 해당 교과 교사가 준비를 해주거나 혼자서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고등학교마다 전형이 다르고 학생마다 세부 전공이 다르니 각 영역에 특성화된 강사가 지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또, 같은 전형에 응시하는 다른 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동기부여가 되고 시행착오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집에서 나름대로 준비한 학생이 실제 실기장 같은 환경에서 모의시험을 반복해 봤던 학생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려면 보통 광역시 단위에 있는 실기학원에 다니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를 병행하기는 참 쉽지 않다.
평일에 매일 그 먼 거리를 실어 나르는 부모도 보긴 했는데 결국 미달이라서 합격은 했다. 원래 대도시에 사는 학생은 금요일 저녁반과 토요일 종일반을 반년 정도 꾸준히 다녀서 합격한 사례도 있다.
즉, 시골에 있는 기숙사 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예고나 체고 입시를 준비하기 만만치 않다는 얘기이다. 기숙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시골에 입시 학원이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예고 혹은 체고 입학이 목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걸 알고 오길 바란다.
그럼 나머지 일반 학생들은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학교 주변 고등학교로 진학해도 되고, 본가 주변의 학교에 가도 된다. 이 중학교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주소는 여전히 본가 고향집으로 되어 있다. 그럼 그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로 원서를 쓸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지역에 있는 일반계 기숙사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 성적이 너무 낮아서 어쩔 수 없이 실업계를 가거나 마이스터를 포함한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간혹 가다가 부모님 중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학원에 본격적으로 보내야겠어’라며 원래 살던 도시로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 또, 중학생 때 이성 친구 때문에 속 좀 썩으신 부모님은 둘을 찢어놓기 위해 본가로 데려가고 거기서도 남녀공학에 보내지 않는다.
이 지역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근처 고등학교라고 해도 중학교보다 약간 큰 규모이고, 이 학교 학생들이 그대로 올라가는 식이다. 중학생 때처럼 사교육을 받는 것은 힘들고 예체능 계열의 입시 준비를 위한 실기학원에 다니기도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고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로를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유는 대학교 입학 성적이 꽤 괜찮아서일 것이다.
그 고등학교 사정은 잘 모르지만, 대학 입시에 굉장히 공을 들이기로 유명하다. 있는 전형, 없는 전형 다 털어서 어떻게든 합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편성과 생활기록부 작성에 혼신을 쏟는다고 한다. 어떻게 중소도시에 있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 성적과 비슷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개인의 역량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느 학교든, 학원이든, 프로그램이든, 재수학원이든, 인터넷 강의이든, 문제집이든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은 공존한다. 아무리 잘 된 케이스가 많다고 해도 내 아이 한 명이 잘 안 되면 아무 의미 없으니 괜한 포인트에서 혹하지 말자.
뭐든 아이의 특성과 잘 맞을지 고려해보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길 바란다. 아무리 부모님의 완벽한 계획이 있어도 아이가 중간에 안 해버린다고 해버리면 다 물거품이 되어 버리니 깊은 대화를 자주 나눴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