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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Sep 02. 2015

마음 지키기

미동없는 식물에 물주는 것 같은 일

일주일 정도 축제 준비 때문에 집을 비웠다. 정말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라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들 외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축제를 마치고 술로 거하게 뒷풀이를 한 후 집에 와서 뻗었다가 늦은 오전에 짐 정리를 했다. 그러다 방 한켠에 있는 화분을 봤다. 아끼는 동생이 생일 선물로 줬지만 종이 무엇인지 이름도 모르는 관엽식물.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몇몇은 떨어졌다. 화분 흙을  만져보니 말라있었다.


술이 덜 깬 상태였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격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화분을 들고 급하게 마당으로 나갔다. 큰일이라도 난 듯. 바가지에 물을 떠서 천천히 화분의 흙에 흘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후 마당 한 켠 나무그늘에 화분을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저 조용히 말라가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집에는 부모님이 계셨지만 그 관엽식물은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동물처럼 소리나 움직임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양식을 섭취할 수 없었다. 내 방 책장 위에서 그저 조용히 말라가는 것으로 자신에게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꾸준히 돌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무언가 부족하면 어떻게든 티가 나게 되어있다. 티가 잘 나지 않는 것일수록, 눈치 채기 쉽지 않은 것일수록 돌이키기 힘들다. 어쩌면,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것. 마음이 어떠한지 신경쓰지 않으면 메말라가기 쉬운, 그래서 어느 순간 문득 나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마음 속에 물 한바가지
흘려보낼 시간

그래서 마음 지키기란 미동 없는 식물에 물주는 일과 같다. 꾸준히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외부의 일들에 치여 복잡하고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일수록, 그런 하루가 삶과 마음을 메마르게 할수록 마음 속에 물 한바가지 흘려보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상처받고 더 약해지는, 그래서 주변에 따뜻한 시선 한 번 보내는 것 조차 어색해지는 사람이 되기 전에.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문장이 어느 정치인의 구호였지만 실제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화분을 보며 다시 느꼈다. 가장 조용하고 잠잠한 것을 스스로 소중하게 돌보는 삶. 누군가에게 기대는 '힐링'이 아닌 스스로를 지켜내는 '스탠딩'으로 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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