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자도 사람이다
(지난 글에 이어...)
밥이나 먹자
다음 날 출근한 홍 군에게 경력 5년차 선배가 아침부터 잠깐 보자고 한다. 아, 어제 릴리즈를 잘 못해서 욕먹으려나 싶다. 걱정된다. 그냥 다 관두고 탈출하고 싶다. 홍 군을 불러낸 선배는 몇 가지 지적을 한다. 잠깐의 잔소리 끝엔 의기소침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다. 저녁에 시간 있으면 밥사줄테니 식사나 하자고 한다. 홍 군은 그러겠노라고 답한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휩싸인 홍 군, 선배와 함께 회사를 나선다. 그러고보니 홍 군은 입사 후 환영회 같은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다들 워낙 바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에서 저 선배가 어떻게 시간을 냈는지 궁금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하다. 겨울 추위에 코 끝이 차가워지니 뜨끈한 것이 생각나던 참인데, 그 속을 어떻게 알았는지 선배는 회사 뒤편 순대국밥집에 홍 군을 데리고 간다.
술을 좋아하는 선배가 순대국을 시키더니 소주도 주문한다. 홍 군은 술을 잘 못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인지 선배가 주는 술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취기가 오르자 모듬전도 시키고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졌다. 홍 군은 취했다. 선배에게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최근의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이 분야가 정말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고민했던 이야기들을 주절 주절 늘어놓는다.
기자도 사람일뿐이야
홍 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가 말한다. “홍 군, 문제는 자네가 아니야. 그저 기자도 사람일뿐인거야. 우리가 바쁠 때 보험회사나 카드회사 등에서 전화오면 대충 받고 끊어버리거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냥 전화 꺼버리는거, 기자들도 똑같을 뿐이야. 그 사람들 워낙 바쁜 사람들이라서 그래. 그 사람들도 월급쟁이인데 별 수 있냐? 코 앞에 닥친 일들이 바쁜데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기 기사 써달라고 전화하는 것을 공손하게 받아주겠어? 안그래?”
홍 군, 선배 말 듣고 보니 맞다. 지나온 세월 텔레마케터들에게서 온 전화를 자신은 얼마나 냉정하게 대했나 돌아보게 된다. 선배는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거 생각해보면 그래도 매너있게 받아주는거야 그 사람들. 우리가 그동안 홍보성 전화 받았던 세월들을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는 그래도 매너가 있는거지. 아무리 대충 들어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많잖아”
얼마 후 선배는 홍 군을 기자미팅에 데리고 나간다. 예전에 자신의 전화를 굉장히 차갑게 받고 끊었던 기자다. 때문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 본 기자는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고 더군다나 친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난 번에 전화를 제대로 못받아서 죄송했다고 한다. 단 한번 전화했을 뿐인데 홍 군을 기억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
홍 군은 놀랐다. 기자는 “우리 일이 워낙 그래요, 시간을 다투다보니까 걸려오는 전화 제대로 못받거나 그럴때가 많죠”라고 한다. 홍 군은 기자들의 입장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기자도 사람이다. 월급쟁이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일에 충실한 것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홍 군 자신도 그저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해하기로 하고. 생각해보면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홍 군은 여태껏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잘났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그 틀에 자신을 맞추려했고, 자신의 상상과 계획에 들어맞지 않을 수 밖에 없는 다른 사람(기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라는 반성을 한다. 좀 더 여유를 가지기로 한 홍 군.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친다. “쫄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