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거나 광고/홍보를 전공하면 최소 한 번 이상은 제안서 제작 형태의 팀플을 진행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전략'이라는 것을 세운다. 수업 시간에 배운 다양한 마케팅 툴과 사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팀플에 활용한다. 보통은 SWOT 등 다양한 분석을 통해 일정한 판단을 내린 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립하는'전략'이라는 것,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인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학부생들은 몇이나 될까? 아니, 지금 실무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몇이나 될까?
2009년 홍보대행사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날을 기억한다. 입사하던 날 회사 대표 면담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난다.
"제안서를 쓰거나 컨설팅을 진행할 때, 분석과 전략이 기본인 것은 알고 있지?
3가지 질문할테니 간단히 대답해봐.
첫째, '약점'이란 무엇인지,
둘째, '위험'은 무엇인지,
셋째, '전략'과 '과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당시 너무나도 간단해보이는 이 질문에 전공자나 이 분야 실무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어정쩡한 말을 뱉어놨다. 어렴풋이 되새겨보자면 이런 식이었다.
"약점은 지금 자사와 자사의 제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고,
위험은 시장에서 현재 혹은 미래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입니다.
전략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과제를 설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표의 답변은 굉장한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약점은 극복하는 것, 위험은 제거하는 것, 전략은 이익이 되는 계획
"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시각을 좀 달리해서 봐야해.
약점은 극복하는 것이고,
위험은 제거하는 것,
전략은 상대방(고객, 경쟁사)의 약점을 파악해서 나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계획이야.
과제는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루어야 할 일들이지"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당시 대표의 대답은 이후의 업무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마케터가 약점을 그저 문제로만 보면 문제에서만 맴돌게 된다. 위험을 단지 위협하는 요소로만 여기면 피할 방법만 찾게 된다. 전략을 단지 방향으로만 여기면 뜬구름 잡는 전략이 수립되기 쉬우며, 이렇게 되면 올바른 과제를 설정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작성된 컨설팅 보고서나 제안서는 어정쩡한 컨셉으로 모든 것을 그르치는 사태를 발생시킨다.
약점은 약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극복할 것들이라고 여기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위험은 위험으로 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거해야할 것으로 보고 제거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략은 방향이나 태도가 아닌 구체적인 계획이라 생각하고, 수립 시에는 고객과 경쟁사의 약점이 어떻게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아야 한다. '000전략'이라는 표현을 종종 들어본 적 있겠지만, 그러한 표현 자체가 전략은 아니다. 단지 전략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의 타이틀이다. 과제는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기적 목표들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접근하고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과제다.
마케터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
어쩌면 이것이 말장난인 것 같아 보일 수 있겠다. 이러한 개념에 반대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명확한 반대의견이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애매모호한 개념, 혹은 전혀 마케터답지 않은 개념을 가지고 얼렁뚱땅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다.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약도를 그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