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 AE’(홍보인)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은 ‘뿌리’다
그동안 ‘실무’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 했지만 오늘은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PR AE가 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이 마주하게 될 ‘현실’, 그 중에서도 여러분의 의욕을 꺾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다룬다. 미리 알아두면 좀 덜 힘들다.
'홍보'라는 단어가 지닌 광의
‘홍보대행’이라는 직업은 ‘홍보’라는 단어가 지닌 ‘광의(廣義)’로 인해 가끔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전략을 기획하고, 그 전략에 의한 보도자료와 기획기사를 작업하는 등 전문 홍보인으로서의 일이 아닌, 마치 동네 고기집 전단지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일이다.
클라이언트 기업의 제품을 정말 멋있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것은 PR AE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없다면 아예 홍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도 해서는 안된다. 다행히도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그저 여기저기 뜨내기로 직장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나 이런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된 일도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야망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홍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이것을 아주 쉽게 무너뜨린다.
직장 내 정치 행위
어느 기업이든 대부분의 직장 내에서는 ‘정치적 행위’가 발생 한다(그렇지 않은 중소기업들도 더러 있다). 그 정치적 행위는 대부분 이렇다. 당장 눈 앞에 내어 보일 수 있는 실적이나 물량적 공세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남들이 자신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일단 올라가면 나중에 자신이 기획한 일이 빌미가 되어 안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으니,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장의 일이 미래에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알 바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실질적으로 어떤 기획이 기업을 위해 정말 좋은 것이건 아니건,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삼는 태도다. 이를 위해서 도저히 상식과 사리에 맞지 않는 일도 얼마든지 감행한다. 이러한 행위에 희생되는 것은 전문 홍보인, PR AE 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이다. 앞서 말한 ‘홍보’라는 단어가 지닌 ‘광의’를 빌미로 홍보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은 난도질당한다.
직장 내 정치를 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시시콜콜한 잡스러운 일을 시키면서 전문 홍보인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뭐 그냥 ‘쌍시옷 소리’ 뱉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 진짜 문제로 나타나는 것은 본업에 대해서 비논리적/비상식적인 요구(요구라기보다는 명령, 심하면 협박)를 하는 경우다.
비상식적인 요구, 혹은 협박(?)
이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민망한 보도자료의 요청이다. 도저히 보도자료로 쓰기에 애매한 사안이지만, 본인이 기획한 일이기에 무조건 언론에 나가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우겨대는 식의 행동을 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꺼리가 되지 않는 것을 자신들 생각에는 멋지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유흥가 길바닥에 뿌려진 전단지에나 쓰일법한 표현을 보도자료의 헤드라인으로 잡으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둘째로는 기획기사의 주제를 형편없고 유치한 것으로 잡아서 무조건 자신들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뱉어대길 원하는 경우다. 정말 낮은 수준의 기사를 ‘직접적이고 기업에 도움이 되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기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몰지각함에서 비롯되는 이 현상은 끝내는 자존심 문제로 치닫기도 한다. 기사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면 ‘자신들도 다 해봐서 안다’라는 식으로 무조건 진행하라는 것이다.
조직 구조 문제, CEO의 마인드
물론 원인에는 여기서 주요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기업 내 정치인’뿐만 아니라 홍보팀의 조직도 문제, CEO의 홍보마인드 부족 등이 있다. 기업의 홍보를 제대로 하려면 홍보팀을 CEO직속 조직으로 갖추어서 다른 정치 세력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CEO가 제대로 된 홍보마인드를 지니려고 노력하면서 홍보 컨설턴트들을 신뢰해야한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기업은 별로 많지 않다. 기업들이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 제대로 된 직제를 갖추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 남는 것은 결국 자괴감이다. 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PR AE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다 견뎌낼 수 있다. 정신적으로 골머리를 앓더라도 괜찮다. 그러나 이건 일을 하는 사람의 뿌리를 흔드는 일이다.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불운한 사실은, 클라이언트는 결코 이러한 것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PR AE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컨설턴트로서 존중하며 의견을 합리적으로 논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에게 홍보 대행업체,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PR AE란 그저 돈 주고 마음대로 쓰는 도구다.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동안 자신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까지 수행했던 PR AE들이 어떻게 일했던 간에 잘라버리고 다른 업체를 찾으면 그만이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말하는 ‘현실은 겪어봐야 안다’라고 하는 말은 대개 이 같은 경우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또 나오게 된다. “그럼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하는거지?”.
누가 뭐래도 자부심을 버리지 말 것
답은 “아무리 비상식적으로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어도 정체성과 자부심을 버리지 말아라”다. 정체성과 자부심을 유지하기란 혼자는 힘든 일이다. 결국 서로가 다독여 줄 수 밖에 없다. 홍보대행사 내에서 일하는 전문 홍보인들은 서로를 다독여야 한다. 서로의 자부심을 치켜세워주고 존중해야한다. 작은 전문성 하나라도 인정해주고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행동해야한다. 그 방법뿐이다. ‘뿌리’를 지키고 굳건히 서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