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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Jun 23. 2019

충만함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음’의 역설


새벽, 술, 책


나는 사방이 적막하고 산산한 바람이 이는 여름철 새벽에 술 마시며 책 보는 것이 좋다. 이때 마시는 술은 여러 가지다. 집에 쟁여놓고 먹는 와일드터키나 잭다니엘 등의 버번 위스키, 편의점에서 사다 먹는 최저가 와인, 만원에 4캔 하는 수입맥주, 깻잎지나 오이지 등을 동반한 소주다. 방의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를 켠 뒤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 고교시절 주요 서식지였던 독서실 분위기가 난다. 독서실의 향취와 더불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새벽 공기를 취기와 함께 맞을 때 고교 시절 푹 빠졌던 밤공기 냄새가 되살아난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그 냄새는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그 설렘 속에는 첫사랑이 있다. 첫사랑의 손을 잡고 걸었던 예일여고 사거리 부근은 서른여덟에 다시 걸어도 설렌다.


위하여


그 시절 나는, 매월 초 독서실 책장에 도시락 사발면을 한 박스 사서 넣어놓았다. 하나에 450원 하던 도시락 사발면 한 박스는 한 달 치 저녁이었다. 어머니께 받은 한 달 치 밥값은, 도시락 사발면 한 박스 구매한 비용을 제외하고 용돈으로 썼다. 주로 첫사랑 혹은 첫사랑의 지인들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돈이었다. 차비도 아끼려고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아침엔 경보 수준으로 갔는데,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땀범벅이 되어 교실로 들어갔다.

이젠 경보를 하지 않아도 땀으로 머리와 등짝이 쉽게 젖는다. 살이 잔뜩 쪘고, 운동 부족이며, 하루 걸러 하루 만취하는 삶이라 그렇다.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외출 시 최우선 고려 사항이며, 이러한 의도를 반영하여 천천히 걷는다. 나에겐 천천히 걸어도 되는 여유가 있다. 급하면 택시를 탈 수 있는 금전적 여유도 있고, 특별히 바쁜 일 없으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삶이라 시간적인 여유와 심리적인 여유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해서’ 살지 않음을 증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이딴 것은 지금 내 삶에 없다. 새벽에 술 마시며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침부터 경보를 하면서 사랑의 꿈을 꾸고 낭만적인 미래를 희망하며 무언가가 되어야겠다는 목적을 가졌던 나는 결국 절망과 공허를 경험했지만, 꿈과 희망과 목적이 없는 나는 매일이 충만하다.

꿈과 희망과 목적이 있어야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그런 것들로 자신을 증명하길 강요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그런 강요를 책에 담아 내거나 강연으로 배설한다. 어찌나 그렇게 확신에 차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도 모를뿐더러, 무언가를 위해서 사는 것이 충분히 자신으로 사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중한 내 삶을 목적 따위가 이끌게 만들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없음의 역설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거기 가면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땐 내 여행을 증명하기 위해 “거기에 가면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이게 좋고 저게 좋고 그건 꼭 해봐야 하고 그걸 꼭 먹어봐야 해” 따위의 말을 구질구질하게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젠 저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한다. “이런저런 게 있지만 그냥 쉬기 좋다”고. 내 성향과 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듯한 그곳엔 내가 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내가 오롯이 느껴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나에게 충만히 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 나 자신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나의 여행이다. 그래서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방이 적막하고 산산한 이 새벽은 여행 같다. 아무것도 없고 이유도 없고 내일도 없지만 그래서 충만하다. 나는 이 시간에 책이 나로 읽힌다. 술은 충만함을 더한다. 조금씩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흘러가는 내가 좋다. 나는 이런식으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제정신으로 삶을 사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무언가를 위해서, 명분에 자신을 소모해가며 정신없이 사는 이들이 일면 대단해보이지만, 그것이 제정신이라고 말할 제정신이 나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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