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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Jun 16. 2019

트렌드가 된 퇴사와 여행

말은 쉽고, 하기는 어려워도.

퇴사와 여행. 낭만적인 트렌드.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오!" 퇴사할 때 회사 단톡방에 올리는 영상으로 유명한 이누야샤의 등장인물 가영의 대사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하고 단톡방에 올리는 상상만으로도 통쾌하지만, 실제로 올려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퇴사는 그야말로 최근 몇 년간 2030대 직장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책은 물론이고, 퇴사를 이야기하는 세미나 같은 것이 다 있을 정도다. 그러나 퇴사는, 일종의 낭만적 관념일 뿐 실행하긴 어렵다. 그래서 더욱 갈망하는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대졸자의 경우, 비싼 등록금을 대출받아서 대학을 다닌 후 졸업하자마자 빚쟁이가 된다. 직장 위치 등의 이유로 살 집을 구해야 하는 경우, 월세 등으로 매월 고정비의 지출이 상당하다. 이렇게 월급을 여기저기 다 떼이면서도 꾸준히 노력하여 등록금 대출을 어느 정도 갚게 될 즈음엔 결혼이 목전에 와 있다. 결혼식에 들어가는 부담스러운 비용을 준비해야 하며, 신혼집 마련을 위해 다시 한번 대출에 의존하게 된다. 애가 생기고, 애 키우는 데에 또 돈이 들어가고, 아이의 교육비 등 부양비를 마련해야 하고, 직장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니 은퇴 이후의 삶도 준비해야 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퇴사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일 수밖에 없다.


물론 비혼주의자(비혼주의는 언제나 한시적이다. 결혼한 부부가 시간이 지나 이혼할 수도 있는 것처럼, 비혼주의자가 시간이 지나 결혼할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것은 한시적일 뿐이다.)들은 이런 걱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그중에서도 그저 살아있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랄까. 특별한 지향이나 목적 없이 사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저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이 다 의미 없다. 결혼하고 애를 낳는 등 내 인생에 불필요한 짐을 굳이 추가하고 싶지 않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것이 인생이라, 나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퇴사만큼이나 말은 쉽지만 하기는 어려운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퇴사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을 관통하는 낭만적 키워드다. 2030 세대에게 여행에 대한 낭만을 활짝 열어준 것은 '여행에 미치다' 등과 같은 페이스북 페이지 및 커뮤니티 들이다. 그러나 여행은 돈이 있어야 떠날 수 있는 것이라서, 페이지나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행자들의 사진에는 '너는 돈이 많으니까 여행을 떠나는 거지'라는 식의 비아냥 섞인 댓글들이 달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꼭 돈이 많아야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여행을 가고 싶다면, 아무 일이나 해서 어느 정도 모은 다음, 그냥 떠나버리면 되는 것이다. 여행 역시 사는 것이다. 지금 발 붙이고 있는 곳과 다른 곳에서 사는 것.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돈을 쓰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살아도 생활비로 돈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핑계 삼아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정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다만, 없는 것이 돈인지 마음인지는 알 수 없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퇴사와 여행, 맥이 통하는 점이 있다. 둘 모두 스스로를 묶어두는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묶어두는 것이 미래에 대한 계획인지, 돈인지, 걱정인지,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두려움인지, 여타의 마음인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을 묶을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면 '현실'이겠다. 그놈의 현실. 현실이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먹고사는 것이 현실인가? 퇴사한다고 해서 먹고 살 수 없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인가?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은 가지만, 그것만이 현실은 아니다. 모든 것이 현실이다. 직장 생활도 현실, 퇴사도 현실, 백수도 현실, 여행을 상상하는 것도 현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현실, 여행을 다녀와서의 삶도 현실. 그냥 사는 것뿐이다. 인생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기대한다면, 듣기도 짜증 나는 '현실'이라는 단어에 집착할 수밖에 없겠으나, 인생은 특별한 것이 없다. 부모의 결합으로 우연히 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게 되었고, 여차저차 하면서 지금도 그저 살아있는 것이 인생이며 그것만이 오로지 현실이다.


2014년. 5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터키 여행을 다녀온 후 책을 냈었다. 백수 생활을 2년 정도 한 시점에는 동남아와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런저런 일을 하며 연명했으나 여행으로 인해 수중에 돈이 다 떨어졌고, 별 수 없이 또 취업했다. 2년 8개월 정도 근무하며 인생 최대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어떻게 죽는 게 제일 편한 방법일까. 이것이 매일의 화두였다. 그러다 퇴사를 결심한 시기에 마침 회사도 장기휴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운 좋게 지난해 말 다시 퇴사했다. 직장을 다닐 때 퇴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면서 살았다. 반대로, 퇴사 후의 삶에서는 퇴사가 쉽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면서 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비용과 다녀온 후의 삶 때문에 고민했지만, 여행을 다니면서는 한국에 있었어도 이 돈을 쓰고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역시나 다녀온 후에도 별문제 없이 이런저런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우연히 '탄생'했으니 그저 '연명'하는 것이 최선


퇴사와 여행. 하고 싶은 이유만큼이나 하지 못할 이유가 많을 것이다. 어찌 됐든, 그저 산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울 것은 없다. 애당초 목표나 꿈같은 것, 삶의 목적 같은 것은 허구일 뿐이다. 우연히 '탄생' 했으니 그저 '연명'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쉬워지고 조금은 더 '나'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멋진 일도 아니다. 다만, 그 둘이 트렌드가 될 만큼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증'이 있다고 나는 느낄 뿐이다. 갈증을 느낀다면 무엇이 되었든 갈증을 해소하는 삶이 되길 바랄 뿐이다. 목이 마르면 마시면 되고 변이 마려우면 싸면 된다. 그 정도의 자유도 없고 자신도 없다면 우리 인생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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