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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Mar 11. 2021

식판 위의 허기

그래도 삶이 살아진다는 궁색함에 대하여

살아진다


진짜 어려웠던 때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중학생의 우리 남매를 키우던 부모님께 닥친 IMF외환위기가 그랬고, 대학 졸업 후 취업할 시기에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발 세계금융위기가 그랬다. 그 때는 모두가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서 모두가 최악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생각하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삶은 살아지고 우리의 세계는 여기까지 왔다. 


하이콘트라스트의 역설


예의 위기들이 동일 색조의 ‘그라데이션’이었다면, 코로나19발 위기는 ‘하이 콘트라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줄을 잇는데,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두 前대통령 現수감자들이 공약해도 넘지 못했던 코스피 3천선은 이런 위기에도 넘어버렸다. 많은 가게들이 코로나19대출을 받고 있다는데,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작년부터 계속 확장 중이다. 폐업한 여행사들이 무색할 만큼 연휴만 되면 제주도행 비행기는 매진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지만 모두가 어렵지는 않은 위기도 결국 지나고 삶은 또 살아질텐데, 이 끝은 과거처럼 동질감으로 서로를 위안하며 마무리 될 것인지 벌어진 격차로 또 새로운 위기의 시작이 될런지 모르겠다. 


위기감


어떤 이들에겐 최악의 선택지만 있으나 어떤 이들에겐 선택의 기회가 찾아온 시대. 누군가는 과거처럼 최악의 선택을 최선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선택은 곧 이익이 된 세계. 점점 갈라지는 세계. 나는 어느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쪽에서 다소 안심하며 살지만, 버티지 못한다면 언제든 절박한 저 쪽으로 이동 될 것 같은 다른 종류의 위기감. 


식판 위의 허기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유가 없다는 것. ‘평등의 자유’는 있을지언정 ‘자유의 평등’은 없는 듯 느껴지고. 오늘의 세상을 사는 방법은 그저 생각하지 않고 성실함을 다하는 것뿐인데 미덕이었던 성실이 꼭 좋지만은 않게 느껴지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 출근으로 그 세상에 들어가는 나는 이쪽과 저쪽의 틈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사내식당 식판 위 잔뜩 올린 음식으로 채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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