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어딘가로 내보내는 사람들
광고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카피를 잘 써야 한다.
광고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카피를 잘 써야 한다. 이 말에는 크리에이티브가 좋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문장 자체를 잘 써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시적 허용’이라는 차원에서 전자가 후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후자가 받쳐주지 않으면 전자의 수준은 떨어진다. 그럼 후자, 즉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하다. 써야 할 단어를 쓰고 비문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무말 대잔치의 시대
특히나 요즘처럼 디지털 광고 비중이 큰 시대일수록 문장은 중요하다. 디지털 광고는 퍼포먼스의 영역에 가깝다 보니, 매출과 직결되어 있다. 매출과 직결되어 있다는 말은 ‘반응’과 그 반응을 반영하는 ‘속도’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일단 반응이 좋을 것 같으면 아무나 아무 내용으로 아무 카피를 아무렇게나 쓰게 된다. 크리에이티브하지도 않은데 ‘훅’하고 당기는 문장을 빨리 써재껴서 광고 소재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비문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단어 사용도 엉망이다.
이런 현상이 광고 AE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에 국한된 문제라면 아무 상관없다. 그런 AE들 천지인 세상에서는 기본만 해도 돋보일 수 있으니 오히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높여준달까. 그러나 그렇게 하향평준화된 세상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텍스트의 속도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 모바일을 통해서만 정보, 좀 더 정확히는 텍스트를 접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 말은, 각종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에 노출되는 광고들의 어휘력과 문장 수준이 대다수 사람들의 어휘력과 문장 수준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 된다. 적절하지 않은 단어와 비문으로 만들어진 광고가 시도 때도 없이 눈에 들어오는 시대. 사람들의 어휘력과 문장 수준도 그에 따라간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광고를 만든다. 더 한정된 어휘와 더 형편없는 비문이 광고에 사용된다. 다시 그런 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광고를 만든다. 더 비루하고 낮은 수준의 카피들이 ‘속도’에 열을 올리며 쏟아진다. 또 그걸 보고 자란 이들이 광고를 한다. 악순환이다.
얼마 전 ‘식도염 베개’라는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식도염 베개'라니. 하고 싶은 말은 ‘식도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겠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수준을 결정하는데, 카피에서 수준 낮음이 느껴지면 제품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 눈에 띄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AI에게 ‘베개를 찾는 타깃’으로 설정된 것이 첫 번째 이유겠고, 두 번째 이유는 ‘반응이 좋으니’ 광고주가 태클을 걸지 않고 계속 집행하는 것이겠지. 이런 광고가 ‘반응이 좋다’는 것은 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이 ‘식도염 베개’라는 카피에 별다른 거부감이나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증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광고들이 원투쓰리포가 아니다. 넘친다.
광고의 공공재적 성격
광고는 공공재가 아니면서도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광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대중이 강제적으로 마주하는 텍스트가 오직 광고뿐인 이런 시대라면 더욱더. 우리의 사명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우리의 가오는 매출이 아닌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은 단어와 문장으로 결정된다. 우리의 가오가 설 때 대중의 수준도 올라갈 수 있다는 ‘뽕’을 한 대씩 맞고 (아무도 몰라주겠지만)매일 단어와 문장을 생각해야 한다. 대중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단어와 문장으로 사고한다.(라는 뽕을 방금도 한 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