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은 생존의 시간이었다.
작가로서의 숨을 완전히 놓지 않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중 가장 오래도록 유지해 온 건,
클래식 연주팀과 함께 꾸린 복합 예술팀 활동이다.
팀에서 나는 비주얼 작업과 공연 스토리 구성파트를 맡았다.
무대 뒤에서 조용히 뭔가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무대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다.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아 낯설었고,
글은 또 왜 이렇게 안 읽히는지 말이 뚝뚝 끊기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며 모든 공연이 비대면 송출로 전환됐다.
카메라 앞은 무대보다는 덜 무서웠고, 반쯤 가려진 마스크덕에 어쩐지 나의 두려움도 반쯤 정도는 감춰질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큐’ 사인이 떨어지면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얘졌고,
내 긴장과 흔들리는 눈빛은 고스란히 생중계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첫해에 15회 차의 공연을 진행했었는데, 단 한 번도 실수를 안 한 날이 없었다.
같은 대본을 두 번 읽은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문단 전체를 빼먹고 다음 문단을 읽은 날도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속으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자려고 누운 이불속에서도 이불킥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경력도 없고, 전문성도 없던 내가 그저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로 얻어낸 자리였기에
더 떨리고 불안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서야만 했던 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건 그저 멈춰있는 나 자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잘 해내기 위해서 ‘ 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버틴 시간이었다
엄마로서도 작가로서도 어느 하나도 완벽하지 못한 내가,
어떤 하나도 놓을 수 없는 불안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