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by 렙쿤

첫 개인전을 치르던 해, 인연이 닿았던 비평가 선생님이 계신다.

순수 예술에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가진 분이었고, 아이 셋을 키우며 작업을 이어가려는 나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주시던 분이었다.


그 인연은 전시가 끝난 후에도 간간이 이어졌다.

비평이나 자문이 필요할 때면 조심스레 연락을 드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따뜻한 말로, 선한 영향력으로 나를 북돋아주셨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에 대해 자문을 구하며 연락을 이어오다가, 결국 준비하던 공모에 탈락하였고 연락은 자연스레 흐지부지 되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해요.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예요”라며 언제나처럼 담담한 인사로 마무리 되는듯 했다.

그런데 몇 달 뒤 이른 아침 일어나 보니 갑자기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한통 와있었다.

평소에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갑작스럽고 뜻밖이었다.


“렙쿤씨! 지금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낙선 후에 별다른 진척 없이 지냈던 터라 순간 ‘뜨끔’했다.

속으로는 ‘아 뭔가 진척이 된 것처럼 보여나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혹시 작은 그룹전에라도 소개해주시려는 걸까 하는 기대도 스쳐 지나갔다.

당시 나는 동기부여도 사기도 바닥났던 터라, 다시 한번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연락에 응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전시는 아니고요, 지난번 렙쿤씨 작업 주제랑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요. 공감도 충분히 이뤄질 것 같고,,, 그 이야기들을 작업이랑 함께 SNS에 짧게라도 올려보면 어때요? 글이 좀 쌓이다 보면 공모전에서도 훨씬 유리할 것 같아요”

순간 스치는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생각해 주신 선생님이 참 고마웠다.


맞는 말이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해봤을까?

작업들이 소비되지 않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무력하게 손을 놓게 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강제성이 조금이라도 부여된다면, 느슨해진 내 삶에도 약간의 긴장이 생길 터였다.

매년 공모를 준비하며, 비슷한 패턴으로 해마다 전시 기획을 하고 이력을 갱신하는 일이 관행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며 작업을 병행하는 내게는 점점 이 구조가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선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SNS에서 다른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마케팅하는 모습을 볼 때면

속으로 ‘대단하다, 멋지다..’ 고 생각은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내 몫이 아닌 일 같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작가본업에 몰입하는 일이 옳다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알리고 내 작업을 어딘가에 팔아야 하는 일이 어색하고 낯설었던 것이다.

그냥 너무 잡생각이 많았던 걸로 정리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내가 할 수 있는일에 대해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계정만 만들어두고 잊고 있었던 ‘브런치’가 떠올랐다.

생각 난 그날부터 일기 쓰듯 짧은 글들을 몇 편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나는 작업과 생각들을 천천히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이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기보다,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 작은 공간에서 나의 이야기들이 단단하고 더 분명하게 남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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