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전업맘과 워킹맘의 고민을 다룬 글을 보았다.
그중 전업맘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나가는 워킹맘 여성들을 바라볼 때, 세수할 겨를 없이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자신의 모습이 순간 초라하게 느껴져 우울해진다는 대목이었다.
‘전업맘의 자리란 초라한 자리인 것인가 ‘ 나 역시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매일같이 출근하고 또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내가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따라 나의 커리어가 확장되기도, 때론 없어지기도 한다.
바쁘게 일이 들어올 때는 ‘워킹맘’에 조금 가깝고, 일이 뜸해지면 어느 순간 ‘전업맘’처럼 집안일과 육아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부 일정들이 많아 수입이 괜찮게 들어왔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이 줄어들면서 전업에 가까운 생활이 이어졌다.
그 틈에 작업실도 얻고 작업에 몰두하려 했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눈앞에 쌓인 살림거리들, 체력적인 한계, 또 가끔 유행병이 돌면 가정보육이 이뤄지는 아이들로 인해 몇 주씩 일을 뒤로 미루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은 일을 감당하지 못한 날은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다.
사실, 살림하랴 아이 돌보랴 운동도 틈틈이 하며 하루도 허투루 쉰 적인 없었는데도 말이다.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곳에는 워킹맘도, 전업맘도, 나같이 프리랜서 엄마도 섞여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 하나 걱정 없는 사람이 없다.
전업맘은 아이에게 안정적인 시간을 줄 수 있지만 경제적인 제약이 있고, 워킹맘은 겉으론 당당하고 멋져 보이지만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느껴 혹여 정서적 결핍이 생기지 않을까 늘 고민이다.
프리랜서는 그 사이에서 양쪽의 장단점을 모두 느낀다. 결국 어떤 자리에 있든 ‘좋은 엄마’가 되거나 ‘더 나은 삶’을 산다는 보장은 없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예전에 아는 피아니스트 언니가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또래보다 이른 결혼을 했던 그녀는 한창 유망하던 시절에 아이를 낳았다.
콩쿨과 연주 활동에 몰두해야 하던 시기였지만, 현실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설거지에 매달린 날들이 더 많아졌다. 해외생활로 조부모나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고, 남편 또한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라 오롯이 그녀가 아이를 맡아야 했다.
많은 좌절과 절망을 겪었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그녀의 연주는 전보다 한 층 깊어지고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보낸 그 시간이 거름이 되어 오히려 그녀의 음악을 더 풍성하게 만든 셈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단순히 커리어가 단절되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서 경력이 쌓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며 분투하는 시간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다양한 관계를 통해 내면의 성숙이 익어가며, 예전에는 나 중심적으로 살던 내가, 자녀를 통해 끝없는 사랑과 희생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밑거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결코 초라한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삶은 한 사람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또 하나의 커리어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