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다.

2025년 회고

by 렙쿤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2025년을 이야기하자면, 마음만 앞섰던 아쉬움이 가득한 해였다.


호기롭게 작업실을 얻었으나, 캔버스 앞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다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아이들을 재울 때도 작업을 향한 마음이 솟구치곤 했다.

하루 종일 작업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찼으나, 머릿속에만 가둬두곤 했다.

이것은 작업을 하고픈 갈망이라기보다,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안에 더 가까웠다.


올해, 많은 작업들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2-3 작품을 당연하게 하리라 믿었고 계획했었는데, 습작까지 포함해 겨우 10개 남짓.

어떤 달은 작업실 문턱을 하루도 밟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답답함이 한계에 부딪혀 작업실 가는 길마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가볍게 아이디어 스케치 하듯이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것이

하다 보니, 작업의 깊이가 더해주면 좋겠고, 그리는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더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결국 붓칠 하나에도 한참이 걸렸다.


좋은 작업을 하려면, 실패와 성공을 따지기 전에 일단 많이 해야 한다.

다작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체력 같은 건데, 난 다작은커녕 실패의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그 마음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작업실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작업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만 같다.


연초에 다들 그러하듯 나도 새해 계획들을 세워본다.

한 달에 몇 점 하겠다는 숫자로 결과를 정하기보다 실패를 두려워 시도조차 않는 바보 같은 마음을 버려야겠다는 목표로 적어본다.


첫 번째, 작업실에 가서 최소 20분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마신다.

이게 작업과 무관한 것 같아도, 작업실을 단순 일터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자리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작업실에 가는 즐거움을 만들기 위한 루틴이 되길 되길 바라본다.


두 번째, 내 작업의 루틴을 sns를 통해 공유한다.

완성작을 올리겠단 야심 찬 계획 말고, 오늘 뭔갈 했다는 증거를 올리는 거다.

이건 남들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못 속이게 하는 장치이다.

공개된 루틴은 귀찮더라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세 번째, 짧은 글이더라도 매일 작업노트를 간단히 작성한다.

이따금 갑자기 글이 쓰고 싶을 때 작업 노트를 써왔다.

그러다 보니 맥락이 끊기기도 하고 가끔씩 쓰다 보니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글이 장황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기록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려운 글 말고, 허세 가득한 글 말고, 일기 쓰듯 가볍게 생각나는 글들을 조금씩 기록해 보는 것이다.

매일의 기록이 쌓이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가 명확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것은 내 작업의 중요한 나침판이 되어 줄테고..

다시 그림이다.

어느 유명 아티스트의 말을 빌려… 그 아티스트처럼 다작하고 싶은 마음을 빌려…. 그 아티스트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