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예술가의 생존기(마지막 편)
운명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았지만
온갖 의심과 마이너스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막상 장소를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꽤 맘에 든다.
나도 모르게 경계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보는데 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다 임대료도 착하다.
뭐 이런 게 운명인가 싶었다.
뭐에 홀린 듯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속전속결로 이사까지 해버렸다.
몇일 뒤 정신을 차려보니 오래된 낡은 샤시는 단열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두 겹 세 겹 껴입어도 모진바람이 비웃듯이 내 살을 파고 들어온다.
새로 장만한 난로는 장식품이 되었다.
못질도 안 되는 벽은 왜 이렇게 많은지,
캔버스 걸 곳도 마땅찮다.
이 추위에 환기도 필수다. 그거 안하면 묵은내, 곰팡내도 난다.
그래도 내 첫 작업실이니 정 붙이고 살아야지 싶어
‘예뻐져라, 예뻐져라.’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여기저기 다듬었다.
애정하는 물건까지 몇개 들여놓고 나니 이제 조금 낫다.
괜히 옛 작업 꺼내 손도 좀 보고,
부푼 기대감으로 새 작업 구상도 잔뜩 해봤다.
아직까진 이곳이 정말 내 작업실인지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시작됐다!
잘 부탁한다. 반갑다 작업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