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이 필요해 3

엄마 예술가의 생존기(마지막 편)

by 렙쿤

운명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았지만

온갖 의심과 마이너스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막상 장소를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꽤 맘에 든다.

나도 모르게 경계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보는데 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다 임대료도 착하다.

뭐 이런 게 운명인가 싶었다.

뭐에 홀린 듯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속전속결로 이사까지 해버렸다.


몇일 뒤 정신을 차려보니 오래된 낡은 샤시는 단열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두 겹 세 겹 껴입어도 모진바람이 비웃듯이 내 살을 파고 들어온다.

새로 장만한 난로는 장식품이 되었다.

못질도 안 되는 벽은 왜 이렇게 많은지,

캔버스 걸 곳도 마땅찮다.

이 추위에 환기도 필수다. 그거 안하면 묵은내, 곰팡내도 난다.

그래도 내 첫 작업실이니 정 붙이고 살아야지 싶어

‘예뻐져라, 예뻐져라.’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여기저기 다듬었다.

애정하는 물건까지 몇개 들여놓고 나니 이제 조금 낫다.


괜히 옛 작업 꺼내 손도 좀 보고,

부푼 기대감으로 새 작업 구상도 잔뜩 해봤다.

아직까진 이곳이 정말 내 작업실인지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시작됐다!

잘 부탁한다. 반갑다 작업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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