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우리 모두의 귀갓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샤프-연극이 끝난 후

by 상구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있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힘찬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책망만이 흐르고있죠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추억의 노래를 좋아하고, 어렴풋이 떠오른 가사를 검색해 기어코 재생목록에 추가하는 일을 즐긴다.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반복되는 후렴구가 기억의 전부였던 [연극이 끝난 후] 또한 그렇게 가볍게 내게 왔다.


밴드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는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곡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은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는 물결 그 사이로 조용히 사라진 원히트원더 밴드라지만, 다소 구수한 취향을 가진 22살의 귀에는 샤프의 멜로디가 너무나도 익숙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르며 재생 목록의 구성은 크고 작게 바뀌었지만, 샤프의 노래는 삭제되지 않았다. 지울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언제부턴가 마음이 괜스레 허탈한 퇴근길이면 자연스럽게 이 노래를 재생하고 있었으니.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어느 일본 소설 속 말. 그 말만은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떡하나, 조직 속의 우리는 맡겨진 역할을 해내야지만 돈을 버는 배우들인 것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열일하는 우리에게 뒷말로 부정직하다는 낙인을 찍어버린 상사.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손놈. 심플하고 모던하면서도 화려한 디자인을 원하는 클라이언트. 무례한 그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껏 구겨져 버린 얼굴 위에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가면을 걸쳐두는 것뿐이다.



이 수고로움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어둑어둑한 밤하늘, 똑같이 분주해도 왠지 아침보다는 차분하게 느껴지는 퇴근 시간 서울 거리. 두 다리는 퉁퉁 부어 먹먹하게 아파져 오고, 머릿속에는 하지 못한 일, 내일 해야 할 일에 관한 생각이 뒤엉킨 채 불어날 때. 바로 그때를 노려 [연극이 끝난 후]를 재생해보자. 노래의 시작을 알리는 기타 소리와 함께 무거운 가면을 내려놓고, 담담한 보컬의 말에 귀 기울이자. 관객들을 다 돌려보낸 차가운 공연장, 그 무대 위의 배우처럼, 내일의 관객을 위해 오늘은 이만 돌아서자. 우리의 위대한 수고로움은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귀갓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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