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가벼운 조증입니다.

첫 번째 대화

by 상구





P : 많이 심각한가요?

D : 엄청 심한 편은 아닌데, 잘 오셨어요. 정말 잘 오셨네요.



P :

나는 언젠가부터, 기분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분명히 머리를 자르면, 새 옷을 사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한강을 바라보면 기분이 들뜨고 마음이 편안해졌었는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이전에도 넋두리하듯 써보았지만, 나의 우울은 꽤 깊었다. 나는 우울의 원인을 찾느라 바빴다. 나는 워낙 분석적으로 고민하는 편이라, 나름대로의 원인을 찾는 일은 쉬웠다. 내가 결론 지은 '내가 우울한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꽤 좋은 분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1. 집이 어두웠다. 사람은 햇볕을 자주 쐬어야 세로토닌 분비가 원활해져서 우울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집은, 창을 열면 차가운 대리석 외벽이 보였고 바깥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선 화장실의 두 뼘 크기의 창문을 바라보아야 했다.

2. 지독한 짝사랑을 했고 실패한 사랑이었다. 꾸준히 후회하고 있다. 왜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좋아하고 있으니 알고만 있으라-라고 엄포를 놓지 못했을까. 우물쭈물하다가 사랑은 멀어졌고 나는 스스로를 탓했다. 나는 그 이후로 누군가를 좋아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덤덤해지지 못하고 있다.

3. 흔히들 말하는 '백해무익'한 것들과 친하게 지냈다. 몸 건강, 마음 건강 모두에 안 좋은 것들과 베프를 먹었었다.

4. 몸이 아팠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매일 허리를 두드리고 다녔다. 절대 나아지지 않았다.

5. 사람들이 싫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내게 시비를 거는 듯했고.

6. 너무 바빴는데, 전혀 뿌듯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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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저 정도. 당시에는 좀 더 많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날 동굴 속으로 몰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결과적으로, 분석은 우울감을 고쳐주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분석에 근거하여 문제를 해결해도 우울감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밝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2년 계약을 과감히 해지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내 방은 동향이라, 아침에 해가 뜨는 시간에 가장 밝았다. 아침이 있는 삶이 시작되는 듯했다. 짝사랑이 실패한 문제는 해결방안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으니 여전히 아리고. 몸에 안 좋다고 생각되는 습관은 차츰 끊었다. 분기마다 으레 있어야 했던 술병이 이젠 날 이유가 없다. 허리 통증 약을 쌓아두고 먹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친절해지기로 했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며 이웃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며 연습했다. 작게 자주 성취감을 느껴보려고 했다. 계획을 세워서 악착같이 지켰다.




분명 노력은 했는데, 되게 밝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자주 무너졌다. 만사가 귀찮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 나는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을 모아 줍는 일도 시작하지 못했다. '삶이 질린다' 싶으면 누웠다. 나는 자주 오래 누워있었다.



상태가 좀 심각하다고 스스로 느낄 즈음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D: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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