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이스토리 3]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방금 세어보니 열 손가락을 다 쓰고도 발가락 몇 개를 빌려 써야 가늠할 수 있는 숫자이다.
과정이 세세하게 기억나는 이사도, 그렇지 않은 이사도 있다. 1년마다 잠자는 공간을 바꿔온지도 8년이 되어간다. 살던 곳에 미련을 두지 않는 일은 이제 너무도 쉬운데, 짐을 싸서 나르고 다시 정리하는 일은 해도 해도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새로운 공간을 마주한다는 설렘이 있어서 그나마 짜장면이라도 욱여넣어가며 버티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가족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전의 곳보다 방과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더 달린 아파트. 엄마를 따라 처음 집 구경을 왔던 저녁이 기억이 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설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시선에 의기소침해있던 나였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넘어 들어와서는 넓게 트인 거실을 바라보며 오빠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딱 이렇게 말했다.
어쨌거나, 일손으로 쳐주지 않던 나이, 그때의 나에게 이사란, 사는 곳이 바뀌는 것. 딱 그 정도의 의미가 있었다. 마냥 설레기만 하던 이사. 지금은 저절로 허리와 머리가 동시에 지끈지끈 아파오는 단어가 되어버려서 그때를 추억하는 일이 더 달게 느껴진다.
어른의 이사는 힘들다. 머무는 곳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예외 없이 어수선하고 복잡한 일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진다. 월세니 전세니, 등기부등본이니 버팀목 대출이니 머리를 콕콕 쑤셔대지만, 꾸준히 속을 썩이는 아이들은 쓸모가 애매한 물건들이다.
얘네는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간다. 주 먹이는 '꼭 필요한 물건이다!'와 '언젠간 필요할 거야..' 그리고 '남 주긴 아깝고 버리긴 싫다.' 등등이다. 힘이 세지면 친구들을 데려온다. 주로 정리함, 수납장. 서랍장과 같이 몸집 크고 멍청한 아이들이다. 감당 안 되는 물건, 정이 안 가는 물건, 시시해진 물건들은 내 서랍에 아무렇게나 박혀있다. 그들은 세트다. 시간이 쌓이고 먼지가 쌓이다 보면 어김없이 이삿날은 돌아오고, 그때 나는 '짐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어른의 이사가 힘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른은 짐을 마주하고 이를 책임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 과감하게 버릴 물건도 생긴다.
하지만 물건을 버리는 일은 힘들다. 마음으로 버린 아이들에게 다시 존재 의미를 만들어주고서는 끝내 다시 먼지 이불을 덮어준다. 무리하게 더 짊어지려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쓰임새를 끼워 맞추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물건을 수월하게 버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삿짐이 줄어들 테니 이사는 필히 쉬워진다. 그렇지만 현대인은 필요한 게 많고, 아무리 버려보려고 해도 버릴 게 없다. 그러므로 하나하나 열심히 포장을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요새는 사람들이 잘 읽지도 않는 신문도 많이 구해두어야 한다. 목이 바싹바싹 타도록 짐을 날라야 하며 오랜 시간 정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사는 힘들다.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가도 불편하다. 내 꽉 찬 6단 서랍장이 불편하다. 수저세트 6쌍이 불편하고, 예쁜 유리컵들이, 높은 찬장에 박힌 계란찜기와 믹서기가 불편하다. 이럴 거면 맘 편히, 뻔뻔하고 당당하게 맥시멀 리스트를 표방하자 생각도 한다. 포장이사비용에 뜨거운 피눈물이 흐를 때,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게 될 테지만. 오랜 시간 생각해도 정답은 없다. 단순하지만 부족함은 없게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이 글에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는 않을 예정이다. 그저 [토이스토리 3] 속 앤디의 장난감처럼, 주인에게 외면받은 물건들의 존재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다. 그들의 존재가 가장 두드러질 때는 이삿날이고, 공교롭게도 나는 지난 목요일에 자취방을 비웠다. '짐의 민낯'을 오랜만에 목격했다. 그래서 써보는 글이다. 마냥 찡찡대 보는 중이다. 이사는 힘든데 짐을 줄이긴 싫다고 말이다. 나는 안다. 내가 평생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삿날은 힘든 기억을 잊어갈 즈음 돌아올 것이며, 나는 또다시 과거의 소비와 함께 늘어나버린 속세의 짐을 후회하게 되리란 것을.
To. 짐
지금쯤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박혀있을 내 짐, 그중 내가 잊어버린 것들아, 나는 너희를 기억해냈지만, 어느 순간 또 잊어버릴 것이다. 사는 공간이 달라지면서 내 삶의 태도도, 일상도 조금은 변할지 모르겠다. 쓰임새가 있다고 느껴지는 물건들은 날 더 자주 보게 되겠지만. 어떤 물건들은 끝내 중간에 버려질 수도 있다. 이는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존재를 잊고 의미를 잃으면 버려진다. 이를 꼭 새기고 있었으면 좋겠다. 더 나은 주인을 만나게 해주고 싶지만, 내가 내 생각보다 게으른 사람이라면 너희는 아무리 값어치 있는 물건일지라도 소리 소문 없이 정리된다. 그때는 가벼운 마음을 갖지 않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쓰면서 난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너희만큼은 내게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처음은 분명 좋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