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의 아침
[2026년 2월 4일의 아침]
과거를 생각한다. 그리움 또는 후회 또는 상처. 그리움 그리고 후회. 그리움 또는 후회 그리고 상처.
주사기 바늘이 살에 꽂힐 때, 그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애써 눈길도 고개도 멀찍이 돌리는 사람이 있다. 후자 즉 나의 경우에 바늘이 남긴 작은 상처는 위치 모양 크기 그 아무것도 알지를 못한다. 알콜솜으로 덮인 따끔한 구멍을 한참을 문지를 뿐이다. 알싸한 통증만을 감각한다.
그러면 궁금하다. 마주하는 자 들아. 주사와 겨뤄보는 사람들아. 당신들은 덜 아픈가? 더 세밀한 고통을 경험하나? 회피하는 사람들의 것보다 나은가? 상처를 똑바로 마주함은 어떤 의미인가.
바늘의 굵기를 모르고 상처의 크기를 보지 못한 자는 회상할 것이 없다. 후회를 거부한다. 회상과 후회는 상처를 더듬는다. 과거의 아픔일 뿐인 무언가를. 나는 덮어진 솜을 다시 꾹 누른다. 언젠간 떼어내야 할, 곧 바싹 말라버릴 작은 솜 조각을.
↳ Re: 늦게나마 직면하기는 합니다만?
[2026년 2월 6일의 아침]
"상투적 표현“은 간편하다.
그렇지만 이 편리함이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세상을 좁게 만들 수 있다 – 프루스트와 알랭 드 보통 덕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흔히 쓰는 표현을 말하거나 적을 때 우리의 느낌은 피상적일 뿐, 스스로가 진정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떠올리고 표현해 내는 선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지만, 사실 그 지나감은 더 다채로운 흐름이었을 수 있다. 쏜 화살보단 오히려 코끼리의 두툼하지만 넓은 보폭을 닮은 성큼성큼 이었을 수도, 스포츠카의 나르시시즘 섞인 굉음을 닮은 부아앙일 수도 있다.
그 각자의 묘사는 듣고 읽는 이에게 상황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당연히 읽는 데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지각하는 삶과 세상의 밀도를 높여주는 레이어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 Re: 프루스트를 사랑하게되
[2026년 2월 20일의 아침]
말이 많은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말이 없는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차마 다 내뱉지 못한 표현은 활자로라도 옮기고,
꼭 전하고 싶었던 혹은
절대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말은
그것을 휘갈겨두는 것만으로도 –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은 채
고요하지만 쾌적하게*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 후련하거나, 명쾌하거나
↳ Re: 영향력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2026년 2월 20일의 아침]
언제 어디서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말]이었다.
[말]과 그에 곁들여지는, 예를 들면
1. 불쾌한 숨결
2. 거슬리는 목소리
3. 수동 공격
4. 비언어적 표현 – 신체 접촉
5. 각자의 방어기제
6. 총체적 파장 = 소음
7. ... 등등
그 [말]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왔고
내 인생에서 하등 중요치 않은 인간으로부터도 나왔다.
그 소리가, 문장이, 함의가 겹쳐지고 쌓여 내 머리를 칭칭 둘러싸면
나는 그 투구를 벗어 자리에 내려놓고서 방에 들어가야 했다.
망각 능력, 감정의 오르내림, 회복력 같은 것들로 나를 덮고, 깊숙이, 포옥 파묻혀야만 했다.
↳ Re: 명절의 [말]들에 지쳐 돌아온 내향인입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거실 의자에 앉아, 손바닥만한 무인양품 노트에 단상을 옮겼습니다. 브런치에 무작정 쓰던 아침 글과는 또 다른 표현과 생각이 써졌습니다. '조각글'이라고 이름 붙여 올려둡니다.
이 '조각'들은 인스타그램 에 가장 먼저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