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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의 점 Jan 16. 2024

간헐적 단상(斷想) 어때요?

[퇴고 프로젝트] 23년 7월 13일 아침의 글


우울이 깊었던 밤이 어느새 걷어지고, 흐릴지라도 공기만은 상쾌한 아침이 밝았다. 이 노트의 앞장에는 어제의 슬픔이 빼곡히 채워져 있지만 애써 눈 마주치지 않고 넘겨버렸다. 고뇌의 잉크가 지나간 흔적만이 얇은 종이 너머 흐릿하게 투영된다. 흐려서, 불투명해서, 모호해서 좋을 때가 있다.

밖에 나가야 할 이유를 기어이 찾고 싶지만은 않은 오늘 같은 날에 나는 밀린 빨래를 돌리며 맛있는 밥을 차려먹고, 커피를 홀짝대며 경쾌한 세탁 종료 알림음을 기다리고 싶다. 밖에 널린 흰 수건을 차곡차곡 개고 말아서 하얀 수납박스 위에 3단으로 쌓아두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 구석 빼놓지 않고 뽀득뽀득 광내준 다음 좋아하는 향의 바디로션을 발라주고 싶다. 적당히 촉촉한 피부와 머리카락을 바스락한 이불속으로 넣어주고 싶다. 단순한 문장과 장면을 보며 낄낄대다가 꾸벅 졸다가 그렇게 한두 시간 잠들고 싶다. 어둑어둑해진 거실에서 조명을 켜고 사각사각 연필로 네모 로직 퍼즐을 풀고 싶다. 쩌-억 하품도 해가면서. 그렇게 단순한 일만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은 날이다.

전날 생각이 많고 깊었던 덕에, 오늘은 과감히 단순해지길 택한다. 사람이 매 순간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잠시 마음에서 등 돌려 당장의 세상을 감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만으로도 하루를 채우기엔 충분하다. 간헐적 단상(斷想)을 실천해 본다.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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