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얼어붙어 있던 블로그에 9월 동안 수백 개의 단어를 쏟아낸 걸 보니 오랜만에 글 쓰는 손이 된 것 같다. 살면서 많은 것을 손을 통해 이뤄왔고,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손이 됐지만 나에겐 글 쓰는 손이 가장 반갑다. 다른 일을 할 때와는 달리 내 의지나 마음처럼 쉽게 찾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손이 돌아온 건지 머리가 돌아온 건지 따진다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글은 머리에서 시작돼서 손끝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머리로부터 시작되는 무언가가 손끝까지 연결되는 유연함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새벽 3시가 넘도록 지인들과 추석 연휴 첫날을 보내고 술을 깰 겸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거의 아침인 5시 반쯤 되었다. 피곤한 기색에 대충 씻고 양치질만 하고 정신없이 잔 것 같은데 딥오리진 갈 시간이 되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8개월째 같은 패턴으로 살다 보니 이미 내 몸은 명절 연휴를 따로 안 가리게 되었다.
다시 여름으로 돌아온 듯한 낮 기온에 술기운까지 겹쳐 평소보다 힘들게 딥오리진에 도착했다. 친구가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동안의 더운 날씨 탓에 피곤했는지 웬일로 문을 열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괜히 걱정이 된다.
나주관 한우곰탕 13.0
친구 해장이나 시켜주고 설거지 도와주러 온 것인데 일단 나부터 해장해야겠다. 13,000원이나 하는 한우곰탕이니 왠지 술이 잘 깰 것 같은 느낌이다.
간혹 오해받는 것 중 하나는 나는 오로지 샐러드만 먹을 것 같다는 주변 반응이다. 나도 몸이 허한 기운이 느껴질 땐 본능적으로 기운이 생길만한 음식을 찾는다. 신사동 1인 카페를 했을 당시엔 몸살 기운이 느껴지면 무조건 설렁탕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다. 채식 비율이 높은 것뿐이지 풀만 먹고살지는 않는다.
채스우드 비엔나커피 5.5
문득 시간이 붕 떠버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싶다가 근처 카페에서 글이나 좀 써보자는 생각에 찾아온 채스우드커피. 장소 안 가리고 도구 안 가리고 글을 써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일단 스스로 대견하다. 오늘 새벽엔 술 취한 채로 걸어가면서 쓰기까지 했으니 본 포스팅 제목의 기본 요소 하나는 충족시킨 듯하다.
주문한 비엔나커피를 두세 모금쯤 마셨을까. 그 사이 어제 아니 오늘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셨던 지인들도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곧 준이(딥오리진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명절이라 장 보느라 조금 늦게 온다는 것이다. 일단 목소리도 쌩쌩하게 들려서 한결 마음이 놓인다. 곧 도착한다고 하니 나머지는 딥오리진에서 일하면서 채워나가야지.
함께 오픈을 하고 바로 따라 들어온 두 손님의 음료를 만든 후, 자리에 앉아 다시 양 엄지손가락을 톡톡 두들겨본다.
지인 블로그에 올려진 최근의 같은 고민의 글 때문에 막상 시작은 했지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감정을 실은 글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 될 때도 있었지만, 보든지 말든지 씹든지 말든지 아무 거리낌이 없어진 걸 보면 예전에 매일매일 손에 불붙어서 글 썼던 그때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는 분명 글을 잘 썼던 것일까.
10년 전 이와 비슷한 일을 처음으로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16.5km, 일주일에 100km 이상을 걸으며 생각하고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습관을 가진 적이 있었다. 사실은 마라톤 준비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뛰는 것보다 산책하면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좋았다. 걸으며 나 스스로와 나눈 대화들은 곧 글로 정리가 되는 유익한 생산자의 생활이었다.
그러한 습관 속에서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 없이 100% 그 이상의 긍정적인 생각만을 바탕으로 무엇을 쓰더라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나의 첫 초콜릿 리뷰와 초콜릿 사업도 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힘든 상황에 처한 자영업자들의 가게를 온갖 정성을 담아 글로 표현하면, 머지않아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고 나의 글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놀라움과 뿌듯함에 글 쓰는 일이 가장 값진 일이라는 것도 경험했다.
하지만 만사가 형통하면 시기와 질투하는 누군가도 생기는 법. 나의 끊임없는 자신감과 거침없는 추진력은 누군가에게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함께 경험했다. 그 이후부터는 글을 쓸 때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주눅이 들어 스스로 많은 단어들을 포기하고 감추어왔던 것 같다.
회사에서 커피 상품 출시를 앞두고 회장님이 따로 부르시더니 커피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다 적어서 보여달라고 하셨다.
초콜릿 전문가로 채용해놓고 카피라이터가 두 명이나 있는 마케팅 팀이 아닌 나에게 카피라이터 일을 맡기시다니 무슨 의도일까 싶었지만, 광고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AE(account executive)였고 제일기획 국장 출신으로 국내에서 유명한 광고를 죄다 만드신 분에게 매일 광고 수업을 듣는 재미도 있어서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서 나 홀로 커피와 연관되어 있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한 시간 동안 A4 분량으로 7페이지 정도를 술술 써서 보여드렸는데, 내가 광고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힌트 정도로만 쓰여도 나름 성공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내가 쓴 문구 하나가 확정은 아니지만 광고안으로 채택이 되어 광고모델 섭외 단계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내가 글을 잘 쓰나?’라는 착각도 들었지만, 어쩌면 평범한 글인데 AE의 시각으로는 더 다른 무언가의 가능성이 보이는 건가? 싶은 한계도 동시에 느꼈다.
정말로 내가 쓴 수많은 문장 중 하나가 광고에서 쓰이고 큰 매출로 이어진다면, (상업적으로서는) 잘 쓴 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출은 곧 인격이니까.
10년 전 경험으로부터 다시 이어서 쓰자면, 현재의 나는 이미 겪을 것 다 겪고, 포기할 것도 다 포기하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 글을 더 편하게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 내 글이 잘 쓴 글인지 아닌지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라면 무조건 잘 써야겠다는 압박감부터 작용할 것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그 사이 부쩍 업그레이드된 블로그 환경 덕분에 더 이상 나의 시간과 노력을 크게 들일 필요가 없게 됐다. 모니터만 쳐다보면 저절로 글이 써지는 세상이 분명 올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그럴듯하게 썼으니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글은 곧 내 자존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결국 나 혼자서는 의미가 없고 나를 바라보는 대상이 있을 때 성립되는 단어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관찰자가 있을 때만 빛의 파동이 입자로 관찰되는 것과 비슷한, 단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대상을 바꿀 수 있는 물리학 법칙처럼 말이다.
관찰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닐스 보어
자존감은 외적 자존감과 내적 자존감으로 구분되고, 외적 자존감은 나를 남들에게 내비칠 때 외모에 대한 자신감 정도로 해석하면 적당할 듯하다. 내적 자존감은 내가 안정적으로 변동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글을 무작정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카카오톡에 'Write Write Write'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강조한 프로필 네임을 걸었다.
그러다가 무작정 생각 없이 쓰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여서 나름 의미를 담아 비슷한 발음 (내 귀엔 같게 들리지만) ‘Write, Right, Light’ 로 변경했다.
내가 쓴 글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야 하며, 그 글이 누군가에게 관찰되어 빛과 같은 좋은 영향력으로 발휘될 때 - 그것이 좋은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걸게 된 프로필 네임이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내 글 때문에 인생 경로를 정한 몇 명의 어린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적도 있으니, 이미 무겁지만 앞으로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하게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고 많이 표현하고 싶다.
모르는 것은 밤을 새워 공부해서라도 쓰고 싶다.
마흔 중반의 나이를 향해 가는 나에게 다시 한번 불붙은 손이 만들어진 것에 감사한다.
내가 고맙다. 내가 대견하다.
내 글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나의 자존감이 되어가며, 누군가에게 관찰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