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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쇼콜라 Le Chocolat Sep 16. 2021

그때도 지금도 카카오봄은 초콜릿 인생의 시작점



13년째 카카오봄을 가다


 해가 설핏해질 늦은 오후 시간, 집에서 프롤로그를 쓰고 카카오봄으로 향했다.

주변 상권을 둘러볼 겸 신용산역에서 내려 지도를 열지도 않고 대충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는데도 낯익은 길로만 걸어가니 어렵지 않게 카카오봄에 다다를 수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13년 전 처음 홍대 카카오봄을 방문했을 당시와 지금의 분위기가 사뭇 비슷하게 느껴져 시간이 참 빠르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됐다.


 분명 처음엔 문학 소년 아니 청년(지금은 중년)의 느낌으로 초콜릿 글을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설명을 위한 글이 되다 보니 초콜릿의 성분과 화학작용과 이론에 관한 글로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초콜릿을 문과생의 시각으로 입문했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이과생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자기만족은 분명 있었지만, 설명하고 분석하는 글은 그 누구에게 보여주어도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뼈저리게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 내가 낳은 책 대부분이 그러한 비참한 인생을 맞이했으리라.




카카오봄 외관 전경(2020년 9월 27일)



내가 봐왔던 카카오봄은 홍대, 삼청동, 경리단길, 그리고 이곳까지 전부 네 곳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세월의 흐름이 당연하게 제 모습을 만들어주는 것도 있지만, 늘 멈추지 않아야 제 모습이 완성되어가는 것도 분명히 있다. 현재의 카카오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미리 밝히지만, 본 포스팅은 카카오봄의 단순 리뷰 글이라기보다는 나와 카카오봄의 연결고리를 늘어놓는 일종의 개인사에 가까운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초콜릿을 포함한 여러 디저트의 맛 표현과 가격은 다른 블로그를 참고하기 바란다.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샹들리에. 샹들리에는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의 상징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손님의 입장에서만 그러하고 초콜릿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그저 언제쯤 화려하게 꽃피우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일종의 선망의 대상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만큼 초콜릿을 다루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고된 작업이고 이론을 익히더라도 실전에서 실력을 발휘하기까지 쉽지 않을뿐더러, 환경마저 대기업이 망쳐놓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초콜릿으로 20년 가까이 버틴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5년 사이 식약처에서 고시한 초콜릿 규격은 '코코아 고형분 함량'이 35%에서 무려 5%나 줄어든 30%로 하락 명시하였다. 당연히 가장 이득을 보는 집단은 초콜릿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일 것이다.



 나에게 카카오봄의 대표 이미지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진짜 초콜릿', '100% 카카오버터'라는 문구를 서적을 포함한 각종 언론과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이 그리고 처음으로 알린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꼽을 것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대기업 초콜릿과 수제 초콜릿의 차이점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과, 한 알의 초콜릿이 왜 이 정도의 가격인지를 납득시키려면 앞서 두 문구가 대표적 수식어로 늘 따라붙어야만 하고, 그제서야 이해한 소비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에 관해 전공자가 아니면 공부를 따로 혹은 전혀 하지도 않는 어리석은 소비자들을 탓하지 못해 한 편으로 씁쓸하지만, 지금의 MZ 세대 쇼콜라티에 또한 이 문구를 여기저기서 가져다 쓰고 있으니 여전히 수제 초콜릿 시장은 어렵고도 이만한 캐치프레이즈가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2017년 8월의 홍대 카카오봄

이날은 신기하게도 신사동에서 1인 카페 마지막 날이었다.인스타 DM을 늦게서야 확인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진짜 초콜릿을 마셨던 추억과 함께 이 날에도 '악마 같은 핫 초콜릿'을 마셨다.



항상 사인이 없으시다면서 짧은 글귀로 대신 적어주시곤 한다.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고영주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아마 카카오봄을 찾은 손님 중 인생이 가장 많이 바뀐 사람이 바로 나일 거라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그 말이 맞는다고 맞장구치셨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책을 냈을 때도 초콜릿 업계에서 유일하게 먼저 연락 주시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셨고, 회기동에 르쇼콜라를 오픈했을 때도 역시 가장 먼저 찾아주셨다.




이때는 초콜릿 음료가 없었어요.... (오픈 초기엔 의도치 않게 맛차 전문점이었음)


업계에서 만난 대부분의 (스스로) 초콜릿 전문가들이 자기들의 자존심 세우는 일이 아니면 추켜세우지 않는 것을 많이 목격한 탓인지, 나에게 보여주셨던 모든 것들이 더욱 진심 어리게 다가온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의 초콜릿 인생길에서 시작점이었던 카카오봄이라는 장소도 이곳을 오랫동안 만들어 온 고영주 선생님도 나에겐 그 누구보다 특별한 장소이자 존경의 대상인 이유다.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두 번째 책을 들고 방문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시 올렸던 인스타그램 스토리



지금은 이름이 스트롱 Strong으로 순화된 핫 초콜릿.

당시 이름은 '악마 같은 핫 초콜릿'이었고, 13년 전 처음 이 한잔 때문에 초콜릿이 궁금해졌고 급기야 독학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원인 제공 대상이 바로 이 음료다.


두 번째 초콜릿 음료 책을 내고 계시진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당일 카카오봄에 들러 이 음료를 그 자리에서 마시면서 뭔가 긴 여정을 정리했다는 짧은 소감을 인스타그램에 남겼었다.


지금은 국내에 있는 모든 초콜릿을 다 먹어봤고, 그만큼 초콜릿에 대한 경험치가 오를만큼 올랐기 때문에 처음 경험했던 그 한 잔과 같은 강렬함 대신 추억만 자리하고 있지만, 진짜 초콜릿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분명 제대로 강렬하고 진한 느낌을 선사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2020년 9월의 카카오봄

(2020년 9월 27일) 서비스까지 챙겨주셔서 더 풍성한 식탁이었다.


작년에 방문했을 당시엔 많이 주문하기도 했지만 서비스까지 챙겨주셔서 한 상 가득히 초콜릿 잔치를 열었었다. 진짜 초콜릿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도 신기함을 느낄 정도로 기분이 업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처음엔 이게 뭘까 싶을 정도였고 그 신기함에 초콜릿을 공부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2021년 9월의 카카오봄

먼발치에서도 알아보시고 주셨던 선물, 감사합니다!


초콜릿을 워낙 좋아하시는 회장님께 드릴 추석 선물로 한 상자 구입했다.

요즘은 화려한 색소와 몰드를 사용한 초콜릿도 많고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졌기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 초콜릿 가운데서 카카오봄만의 초콜릿을 몇 마디로 정의한다면, '변하지 않는 일관됨', '꾸준히 고수하는 정통 벨기에 스타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말은 쉽지만 20년 가까이 정통 스타일을 고집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식음료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 바로 '재현성' sustainable 인데,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괴롭고도 지독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고독이며, 여기에 더해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은 꺾이지 않는 자기만의 고집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 포스팅을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서너 시간 남짓이지만, 이 안에서 밝힌 것들은 나의 압축된 13년 치 초콜릿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카카오봄을 찾는 고객들은 아마도 13년 전의 첫 맛을 그대로 느끼고 싶은 나와 같은 손님들도 대다수 있을 것이며, 가장 기본에 충실하고도 오랜 시간을 통해 검증된 진짜 장인의 초콜릿을 맛보고 싶어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을 것이다.


10년 후에 나는 어떤 초콜릿 인생길을 걷고 있을지, 카카오봄을 어떻게 표현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성분 얘기 1 도 없는 초콜릿 글, 끝."

작가의 이전글 [르쇼콜라] 프롤로그, 다시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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