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조각에 담겨진 소비심리 - 가성비를 감성비로, 소비를 교양으로
저의 첫 저서인 <다크 초콜릿 스토리>를 출간한 지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개정판과 초콜릿 음료 레시피북의 중국어판을 출간했고, 온라인에서는 짧은 글을, 오프라인에서는 강의를 통해 제 생각을 단편적으로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책은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한데 모아 엮은, 보다 종합적인 기록입니다. 단순한 초콜릿 이야기가 아니라, 초콜릿을 매개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소비 심리와 문화, 그리고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통해 풀어낸 인문학적 탐구의 결과물입니다.
제가 필명 ‘르쇼콜라(Le Chocolat)’로 활동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영화 쇼콜라<Chocolat, 2000>에서 영감을 받아, 초콜릿을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자유, 억압과 해방을 이야기하는 언어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르쇼콜라’는 초콜릿을 문화와 이야기를 해석하는 하나의 렌즈로 삼겠다는 제 선언이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이 이름은 저의 글과 강의, 브랜드 활동을 관통하는 상징이 되었고, 결국 지금 이 책 <르쇼콜라 아비투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알기 전까지 저는 초콜릿 업계에서 겪는 여러 현상들을 막연하게만 받아들였습니다. 왜 한국에서 고급 수제 초콜릿 사업은 늘 어려운가, 왜 특정 브랜드는 시대의 상징처럼 소비되는가, 왜 마트에서 제대로 된 다크 초콜릿을 찾기 힘든가, 왜 소비자를 기만하는 제품이 오히려 시장에서 통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오래도록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야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듯 비로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은 여전히 초콜릿 문화의 후진국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습니다. <다크 초콜릿 스토리>를 한창 집필하던 2015년 무렵만 해도, 식품공전에서는 코코아 고형분 함량이 35% 이상이어야 초콜릿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5년만에 다시 살펴본 개정된 규정은 기준이 30%로 낮아져 있었습니다. 단순한 법령 변경 같지만, 이는 초콜릿을 바라보는 사회적 기준, 즉 소비자와 산업이 공유하는 아비투스의 수준이 여전히 낮다는 뜻입니다.
국내 쇼콜라티에와 빈투바 초콜릿 메이커가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벽도 있습니다. 왜 소비자에게 수제 초콜릿과 빈투바 초콜릿의 가격을 설명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만든 고급품을 당연한 가치로 인정받으며 판매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한 작은 실마리입니다. 가성비에 머무는 소비 문화를 넘어, 감성비를 거쳐 교양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 저는 그 가능성을 초콜릿을 통해 묻고자 합니다.
이 책은 초콜릿이라는 작은 세계를 통해 소비와 문화, 그리고 교양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제안입니다. 15년 넘게 업계를 지켜본 경험, 제가 직접 초콜릿 음료를 만들고 팔아온 체험, 그리고 강의와 글을 통해 나눈 대화가 이 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책은 여섯 개의 장을 따라 전개됩니다.
1부에서는 아비투스의 개념과 한국 사회의 맥락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초콜릿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아비투스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구합니다. 3부에서는 소비를 교양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다루며, 4부에서는 제가 직접 경험한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합니다. 이어 5부에서는 아비투스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이론적 서사와 미래 전망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어떤 아비투스를 길러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부디 이 책이 초콜릿을 단순한 간식이 아닌, 우리 사회의 욕망과 아비투스를 비추는 거울로 바라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10년 전 제 첫 책에서 품었던 바람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번 책이 그 미완의 퍼즐을 조금은 채워주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