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가성비에 갇힌 사회, 감성비로 나아갈 길
3-4. 가성비에 갇힌 사회, 감성비로 나아갈 길
효율만을 강조하는 가성비의 논리는 결국 소비자의 자율성을 잠식한다. 이제는 경험과 감각, 교양을 존중하는 감성비의 소비로 전환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소비를 문화적 자본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소비 문화는 오랫동안 가성비라는 단일한 잣대에 지배되어 왔다. 가격 대비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이 습관은 처음에는 합리적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성비는 단순한 소비 습관을 넘어 사회 전반의 아비투스로 자리 잡았고, 그 결과 자영업 붕괴와 문화적 빈곤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영업자 100만 폐업의 시대는 단순한 경기 불황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가성비 경쟁이라는 집단적 아비투스 속에서 서로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운영하다가,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외부 충격을 맞아 더는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진 줄도산 사태다. 소비자는 ‘싼 게 최고’라는 습관을 내면화했고, 자영업자는 그 기대를 맞추기 위해 끝없는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낮아진 이윤 구조는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취약성을 드러냈고, 시장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이는 단순히 몇몇 가게가 문을 닫는 문제가 아니다. 5천만 인구의 땅덩어리 안에서 자영업이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야 국가 경쟁력도 산다. 자영업이 무너지면 일자리와 내수 시장이 동시에 타격을 입고, 사회의 다양성과 창의성도 함께 사라진다. 특히 음식 문화에서 개성과 정체성이 담긴 작은 브랜드가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의 문화적 아비투스가 빈곤해진다는 뜻이다.
이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현상이다. 그의 프랜차이즈들은 ‘저렴하지만 푸짐한 한 끼’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비자는 가격 대비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고, 이는 빠르게 사회적 습관이 되었다. 가성비는 단순한 선택 기준을 넘어, 한국 사회 집단적 아비투스가 소비 영역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양상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러한 아비투스가 시장을 어떻게 변형시키는가이다. 예를 들어, 외국 유학파 셰프가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담아 차린 레스토랑에서 2만 원이 넘는 파스타를 내놓고 있다고 하자. 그 근처에 백종원의 가성비 파스타 프랜차이즈가 들어선다면 소비자는 셰프의 정체성과 경험보다 먼저 가격을 비교한다. 결국 셰프의 경험과 철학이 담긴 파스타와, 매뉴얼에 따라 알바생들이 만든 파스타가 같은 선상에서 단순 비교되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진다. 소비자의 감각은 효율성 중심으로 재편되고, 다양성과 실험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 나아가 일부 소비자들은 ‘싸고 푸짐하니 최고’라며 이러한 현상을 찬양한다. 그러나 이는 취향의 발현이 아니라, 집단적 아비투스가 강요한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가성비가 곧 정의’라는 식견은 집단적 아비투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태도이며, 결과적으로 더 넓은 미식적 경험과 교양적 감각을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이나 프랜차이즈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지금 어떤 소비 문법을 따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아비투스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과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일본의 자영업자들은 전통적으로 같은 업종으로 동일한 상권에 들어서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켜왔다. 이는 단순한 경제 논리라기보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상도덕적 아비투스로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관행을 사무라이 시대의 규범 문화와 연결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당시 같은 업종이 같은 골목에 들어서는 것은 상대의 생계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되었고, 극단적 상황에서는 폭력으로 응징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기억과 관습이 사회에 내면화되어, 오늘날까지도 자영업 시장을 규율하는 문화적 규범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 인과라기보다, 사회적 장 속에서 형성된 아비투스의 가설적 기원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식음료 시장은 과잉 경쟁보다 공존과 차별화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같은 업종이라도 지역을 나누거나 메뉴를 변형하여 경쟁 대신 상생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안정성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화적 다양성과 상징 자본의 균형을 유지하는 토대다. 한국의 자영업이 가격 인하 경쟁으로 몰락하는 경향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가성비를 내세운 집단적 아비투스는 한국 사회를 단기적 효율성의 덫에 가두었고, 그 결과 자영업 붕괴와 문화적 빈곤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성비의 회복이다. 감성비란 단순히 가격 대비 양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소비의 가치다. 이는 장인의 손길, 셰프의 철학, 브랜드가 담고 있는 맥락을 읽어내는 소비자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빈투바 초콜릿은 감성비적 전환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량생산 초콜릿은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카카오의 개성과 산지의 이야기는 대부분 지워진다. 반대로 빈투바 초콜릿은 한 알의 카카오빈에서 출발한다. 농장의 토양과 기후, 발효와 로스팅 과정, 장인의 손길이 더해져 비로소 한 조각의 초콜릿이 완성된다. 소비자가 빈투바 초콜릿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달콤함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과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행위다.
이 차이는 가격표 너머에서 드러난다. 편의점 초콜릿과 비교하면 빈투바 초콜릿은 결코 싸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는 카카오 농부의 노동, 장인의 철학, 그리고 소비자가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 풍미의 언어가 담겨 있다. 결국 감성비란 바로 이러한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가성비에서 감성비로 전환될 때, 자영업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사회적 교양의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빈투바 초콜릿을 둘러싼 작은 테이스팅 모임, 시음회를 통한 언어의 공유, 산지와 생산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경험은 모두 소비를 교양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된다. 다양성이 살아 있는 시장, 정체성이 존중되는 문화, 교양을 축적하는 소비가 사회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가격만으로 음식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 답은 결국 감성비의 아비투스를 회복하고, 빈투바 초콜릿처럼 작은 한 조각 속에서도 맥락과 이야기를 음미하는 태도를 확산시킬 때 다시 거론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