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의 신인류, 가스트로노마드

by 르코

제주시에서 애조로와 97번 도로를 차례로 타고 40여분을 달려 삼달리, 다시 성산 방향으로 20여분을 더 가서야 인적 드문 동네에 위치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점심 한 끼를 위해 1시간여를 쉼 없이 달렸다. 함께 간 친구는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냐며 일면식도 없는 가게 사장님 걱정을 하며 가게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심시간을 조금 넘겼음에도 식당에는 자리가 없었다. 친구는 이미 줘버린 걱정을 돌려받기라도 하려는 듯, 다들 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야?라며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이곳에 온 방법을 묻는 게 아니라면 분명 부러움의 표현일 것이다. 1시간의 여정이 아까워서라도 우리는 30분을 웨이팅 하고서야 늦은 점심 식사할 수 있었다.


가스트로노마드(gastro-namad)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퀴르농스키(Curnonsky)가 만든 신조어로, 미식이라는 뜻의 가스트로노미(gastronomy)와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마드(nomad)를 합친, 미식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1921년, 퀴르농스키는 친구였던 마르셀 루프(Marcel Rouff)와 함께 프랑스의 지역을 돌며 [미식의 나라 프랑스(la France gastronomique)] 시리즈 28편을 집필한다. 두 명의 가스트로노마드가 쓴 프랑스 미식 일주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향토 음식에 대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00년 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신조어가 왠지 낯설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가스트로노마드가 일상화된 삶을 살고 있다.


장사를 하고자 가게를 찾을 때, '목이 좋은 자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임대료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교통이 좋고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두 가지의 장점이 있다. 첫째, 홍보의 용이성. 사람들의 드나듦이 많으므로 가게의 상호(혹은 파는 물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될 수 있다. 둘째, 접근 편의성. 고객이 필요로 할 때 이동 동선 가까이에 있으므로 쉽고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

제주 여행정보 습득 경로_제주관광공사 2019

애월에 있는 [리치 망고] 본점은 수년 째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망고주스를 사서 애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인스타그램에 인증을 하는 일련의 의식이 마무리 되면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회전율은 또 얼마나 높은지.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유독 이곳이 잘되다 보니 주변으로 식당, 기념품샵, 카페 등이 있으나 업종이 자주 바뀌곤 했다. '임대' 푯말이 붙은 채 몇 년간 비어있는 곳도 있다.

여행자들은 사전에 '갈 곳'을 정하고 비행기를 탄다. 여행 정보를 얻는 경로는 인터넷 사이트/앱이 전체의 76.2%이며 2-30대로 한정하면 87.5%까지 치솟는다. 세부적인 채널에 대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포털은 네이버, SNS는 인스타그램으로 추측된다. 사전에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입도한 후부터는 퐁당퐁당 이동하는 여행자들의 성향을 보건데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목이 좋은 자리를 찾을 이유는 없어보인다. 앞을 오가는 사람들보다는 인스타를 오가는(계획을 세우려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게 더 현명할 것이다.


제주관광공사, 2019

탑동에서 호스텔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한 손님이 숙소에 체크인하고 밤 10시쯤 되었을까. 중문에 위치한 라운지 바를 간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제주시에 사는 내게 서귀포는 외국쯤으로 여겨진다. 밤 10시에 유흥을 즐기러 외국을 간다고 나서니 놀라지 않겠는가. 제주를 찾는 내국인 여행자들 중 86.2%는 렌터카를 이용하여 여행한다. 탑동에서 중문은 예사다. 제주 곳곳 어디든 누빌 준비가 된 사람들이 열에 아홉이나 된다. 여행자들의 기동력은 동네 단위가 아니라 제주 전역에 이른다. 굳이 접근성을 고려한다면 가게의 접근성보다는 주차장 접근성을 높이는게 고객에겐 더 필요한 일일 것이다.


2008년 제주에 올레길이 생긴 이래로, 제주의 구석구석에 카페, 게하,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시절,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장사를 준비하며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오겠어?" 하며 반신반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만든 보석 같은 공간들이 오늘날 제주 여행의 신인류, 가스트로노마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