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커뮤니티

by 르코

하루에 딱 두 마디 할 때도 있어요. 김치찌개 하나 주세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세요. 입도 3개월 차, 제주 생활을 묻는 지인의 말에 내가 했던 대답이다. 제주에 입도하던 날, 섬을 통틀어 내가 아는 사람은 0명이었다.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즐겨가는 음식점 사장님과 스타벅스 스텝이 전부인 날이 허다했다. 대인기피증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입에 거미줄이 쳐지기 전에 방법을 찾아보려 했으나 제주는 여행을 제외하고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문화적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 타고 독서모임을 나갈 정도의 열의를 보이는 스스로를 보며, 인간의 사회성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사회적 관계의 소멸에서 오는 당혹감이란. 나뿐이랴, 모임을 위해 주기적으로 비행기 타는 제주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


1인 1 커뮤니티

세상을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오프라인 유료 독서모임 트레바리의 슬로건이자 미션이다. 독서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1세대 격인 트레바리는 현재 누적 회원 4만 7천(2020년 11월 기준)명의 거대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공간 기반의 취향관, 버티컬 영역의 크리에이터스클럽, 문토, 버핏서울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소모임까지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들이 출현하며 소셜 디스커버리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친구, 연인 등의 깊은 관계보다는 OO님으로 부르며 느슨한 연대를 추구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1인 1 커뮤니티의 일상을 살고 있다. 제주의 상황은 어떨까. 2010년대 이후로 이주자들이 한 달에 약1,000명씩 쏟아져 들어왔다. 이 중 서울의 문화적 인프라에 익숙했던 젊은 이주자들은 관계 형성이 어려운 제주살이에 적잖은 고충을 토로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몇몇은 스스로 사람들을 모아 작게나마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운)영자의 취미생활

제주의 동쪽에 위치한 종달리는 수년 전부터 이주민들이 만든 책방, 게스트하우스, 디저트 카페, 편집샵 등이 생겨나면서 여행자들의 떠오르는 핫플이 된 동네이다. 이곳에 위치한 작은 프렌치 비스트로, 릴로제주에서는 정기적으로 프랑스어 수업이 열린다. 프랑스에서 살다 온 가게 사장님은 요리로 돈을 벌고 프랑스어로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자들에겐 핫한 동네이지만 사는 사람들에겐 허한 동네이다. 이 뿐 아니라 동네 책방에서는 북 클럽을 운영하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공예품 만들기 취미반을 운영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재능부자 운영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풍경이지만, 그만큼 수요자의 니즈가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숙해가는 커뮤니티

2020년, 제주의 커뮤니티는 좀 더 보편화되고 성숙해지고 있다. 64웨이브는 제주 도민 출신의 20대 친구들이 모여 만든 러닝 크루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탑동과 용담 해안로 일대 약 5km를 달린다. 벌써 93회 세션이 열렸고 매회 20여 명 이상이 참여한다. 마라톤 대회와 같은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서울이나 부산의 러닝 크루들이 방문해 함께 달리기를 하며 친목을 다진다. 매주 목요일 러닝 세션이 있는 제주RC는 유명 육상선수를 초빙하여 레슨을 여는 등 단순 친목의 목적뿐 아니라 성장의 기회도 제공한다. 러닝, 자전거 라이딩, 출사 모임과 같은 취미형외에도 스타트업, 프리랜서들의 비즈니스형 커뮤니티도 견고하게 운영되고 있다.


여행자들을 위한 커뮤니티

2019년 내국인이 연간 제주를 방문한 횟수는 평균 2.7일이다. 통계가 아니더라도, 지인들의 인스타를 보면 그야말로 '툭하면'제주다. 성수기가 아니어도 주말을 이용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주의 커뮤니티는 점차 여행자를 대상으로도 실험되고 있다. 그것을 증명해가고 있는 회사가 빈집을 고쳐 독채 숙소를 만드는 다자요이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로 채우는 게 당연했던 제주 숙박업 시장에서 숙박객들과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며 심지어 사업의 확장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다자요는 사업 초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집을 고치는 비용을 조달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며 폐가가 살아나는 성장 스토리에 감동한 사람들이 크고 작은 힘(자금)을 보태 현재는 세 곳의 숙소가 성업 중에 있다. 다자요만의 엣지있는 스토리텔링은 잠을 자는 곳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곳으로, 숙소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이 자처하여 팬이 된 것이다. 이들은 수시로 자신이 투자한 제주의 숙소를 방문하고 sns에 자랑하는가 하면 회사는 밥을 지어 손님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 숙소의 귤밭에서 열린 귤을 철마다 투자자의 집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부동산 개발회사가 온기 가득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거주 인구가 줄어가는 모든 지자체들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사활을 건다. 몇몇 1,000만 관광객을 달성한 지자체는 재방문 또는 체류에 포커스 한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한다. 연간 1,500만의 관광객이 찾는 국내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 재 방문의 숙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마저 뚝 끊긴 요즘, 내국인들의 방문은 귀하디 귀하다.제한된 인구(혹은 인구가 줄고 있는)상황에서 재 방문의 숙제를 필연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여행 산업은 커뮤니티의 성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