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행 중이지만 혼자만 있고 싶진 않아

소셜 콘텐츠의 중요성과 앞으로의 변화

by 르코

혼행족의 증가와 소셜 커넥션

"오늘날 호스텔 시장에서 가장 기대하는 그림, 그것은 완벽한 밸런스의 프라이버시, 어메니티, 소셜 액티비티입니다." 세계 최대의 호스텔 예약 플랫폼, 호스텔월드의 CEO인 Feargal Mooney의 말이다. 호스텔은 백패커들이 많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성장한 숙박업의 한 형태로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저렴한 숙박비. 돈이 없는 백패커들을 위해 값싼 잠자리(도미토리)와 공용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 여행자간의 교류. 하룻밤 눈 붙이기 위해 찾은 숙소이지만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다 온 외로운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눈다. Feargal Mooney의 선언은, 오늘날의 호스텔은 저렴하게 하룻밤 자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여행자들과 교류하기 위해 선택하는 숙소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나를 위한 오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래보다는 오늘이 중요하며 나를 위한 경험에는 큰 비용도 마다하지 않는 가치 중심의 소비를 한다. 혼행족 증가의 현상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제주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19년 제주를 혼자 찾은 사람은 14.2%에 이른다. 최근, '코로나 일상 시대, 제주 관광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주관광학회 세미나에서도 전문가들은 혼행족의 증가를 대비한 여행 콘텐츠를 주문하고 있다. 코로나는 혼행족의 숫자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의 시작과 성장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로써, 유럽에 호스텔이 있다면 국내에는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가 있다. 인접한 국가의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백패커들의 숙소로써 시작된 것이 유럽의 호스텔인 반면, 우리나라의 게스트하우스는 지역만의 정취를 담은 공간의 특별함에 매료된 여행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를 주도한 도시가 제주이다. 2008년 올레길의 개장은 숙소의 입지가 바다에서 마을로 이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올레길 여행의 중간에 쉬어갈 수 있도록, 동네 할망들이 사는 집의 남는 방을 여행자들에게 내어주면서 제주 게스트하우스의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올레길을 여행한 사람들 중에는 마을 구석구석의 낡아 버려진 집의 특별함과, 말도 안 되는(당시 육지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임대료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제주로 넘어와, 게스트하우스를 창업하기 시작하면서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제주 숙박 시장에는 호텔과 펜션의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다. 각각의 공간적 특성은 다르지만 폐쇄적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차단된다는 것이다. 가족과 단체여행객 중심의 시장에서는 당연했던 일이다. 제주 숙박업 시장에 등장한 게스트하우스는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소셜 커넥션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아니, 급속하게 팽창했다.


게하 파티 문화 : 난장에서 우아까지

2018년 2월, 제주의 한 게하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게하의 장점인 소셜 커넥션의 가치가 시장의 과다 경쟁으로 인해 도구화/음성화 되어가면서 누적된 리스크가 단숨에 터져버린 것이다. Hospitality(환대업)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숙박 서비스업에서 일어난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게하는 순식간에, 그리고 철저히 고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비단 살인 사건뿐 아니라 성추행/성폭력 등의 성범죄와 고객 서비스 불만족 사례가 지속되고 있었으나 대체제가 없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게하 시장 초기, 2만 5천 원 선에서 형성된 저렴한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게하가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이 시작되었고 현재 1만원 아래의 게하도 등장했다. 숙박만으로는 수익을 올리거나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기 어려워진 게하 사장님들은 별도로 진행하는 흑돼지 파티에 비용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음식점업 허가를 받을 수 없는 농어촌 민박업(게하)이 해서는 안 되는 불법적 행위였다. 술에 취한 투숙객,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채용된 무급 스텝, Hospitality업의 전문성과 태도가 결여된 업주라는 3가지 인적 잠재리스크가 결국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호스텔을 운영하던 올해 가을쯤, 태풍으로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옴짝달싹 못하고 리셉션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그때 예약 문의 전화가 울렸다. "거기 오늘 파티해요?" 태풍을 뚫고 올 만큼,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욕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강력하다. 게하가 대형화되고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은 숙소에서는 별도의 음식 업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기존의 흑돼지 파티로 대변되는 난장스런 파티가 아닌 와인 시음, 북 토크 등 건강한 파티들이 많아지면서 게하의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소셜 콘텐츠의 진화

"너 인만추니 자만추니?"

요즘 소개팅을 주선할 때, 당사자에게 묻는 질문이(라고 한)다. 인위적인 만남 추구와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이다. 인만추라고 하면 단 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자만추라고 하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불러서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 소개팅의 방법이 인만추였으니, 이러한 질문이 나온 걸 보면 요즘은 '자만추'의 시대인 것이다. 소개팅만 그러할까. 소셜 콘텐츠를 즐기는 여행자들도 자만추다.

소셜 콘텐츠의 원조 격인 게하 파티가 변화의 파고를 넘는 사이, 숙소에서 방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프로그램이 아닌 독립적 프로그램으로써 소셜 콘텐츠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2016년 6월, 입도하여 처음 했던 일이 '여행자를 위한 건강한 파티'를 만드는 것이었다. 게하에서 제공하던 흑돼지 파티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고 새로운 여행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카페를 빌려 여행자들을 모집했다. 오직 교류의 경험에만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 시도였다. 앞서 '반 보 앞선 기획'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밝혔듯, 이때의 기획은 시기 상, 한 보는 앞선 기획이었고 결과적으로는 4회를 끝으로 접어야 했다. 4년이 지난 요즘, 고객의 수요가 커져감에 따라 이와 관련된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거실 여행을 표방하는 남의집이 대표적이다. 호스트가 여행자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특정 주제의 대화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보이차를 좋아하는 주인장이 '다도'모임을 열기도 하고, 캠핑 덕후인 호스트가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자신의 집 마당에서 캠핑을 하기도 한다. 여행자는 호스트의 취향(주제)에 공감하여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좋아하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교류함으로써 친분을 쌓게 된다. 이 밖에도, 에어비앤비, 마이리얼트립, 프립 등의 플랫폼은 다양한 투어/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제주의 경험과 더불어 참여자들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만들어내는 건강한 소셜 커넥션 콘텐츠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은 연 2.7회를 중복 방문한다. 제주의 대표적 여행 명소는 이미 다 둘러봤다는 말이다. 이들의 방문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행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고, 여행자의 특성에 기인하는 소셜 콘텐츠는 제주 여행 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프로그램에서 두 어시간의 교류대상을 찾는 것뿐 아니라, 여행을 함께 할 동행 문화도 활발하다. 네이버의 동행 구하기 카페는 하루에도 수 백건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최근에는 동행 구하기 전용 앱 서비스도 출시되었다. 혼행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혼행 중이지만 혼자만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소셜 콘텐츠는 앞으로도 더욱 진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