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활자의 탄생

고정매출을 만드는 시드고객

by 르코

여행자는 흑돼지를 먹고, 도민은 백돼지를 먹는다. 는 말이 있다. 가격이 1인분에 4-5,000원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맛에서 큰 차이가 없다보니, 생활 물가를 적용해야하는 도민은 백돼지를 선호한다.(백돼지라는 용어를 쓰는 도시는 제주가 유일하지 않을까). 맛이 비슷한데 왜 비싸지?라고 생각해본 들, 여행자들이 흑돼지만 찾으니 당연한 시장 논리다. 여행 온 친구들이 으레 묻는 말이 있다.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냐고. 여행자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면 생활하는 데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체감 물가라고 대답한다. 그 보다 문제는, 겹치지 않으려다 보니 갈 만한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도내 관광 산업 총매출은 약 9조 정도로, 지역 내 총매출의 약 42%를 차지한다. 관광 도시답게 절대적이다. 서울 살 적에, 밤에 분위기 좋은 bar에 앉아 위스키 한 잔 하는 게 낙이었다. 내가 어디 있든, 술을 즐기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제주에서는 기껏해야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싸게 구매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집에서 마시곤 한다. 렌터카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이다 보니 제주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여행생활자의 탄생

매일 약 4만 2천 명(2019년 기준)의 여행자가 제주로 입도한다. 이들의 평균 체류 기간이 4.55일이니, 오늘 하루, 제주를 돌아다니는 여행자는 약 19만 명 정도로 추산해볼 수 있다. 거기에 거주 인구 약 70만 명까지 더하면 현재 제주 땅을 밟고 있는 사람은 89만 명에 이른다. 광역시에 버금가는 큰 숫자다.

재주 상회에서 분기별로 발간하는 iiin매거진에서 여행생활자라는 표현을 발견하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다. 생활하듯 여행하는 여행자를 지칭한 말이었겠으나 나는 이 용어를 다른 집단에 적용하고 비즈니스 타겟팅에 활용한다. 바로 여행하듯 살아가는 이주민 집단이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 인구는 평균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올레길의 개장과 가수 이효리 씨의 이주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당시만 해도) 월세 같은 연세에 집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도 이주가 가능했다. 60대 은퇴자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제주 이주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3-40대의 젊은 이주민들이 대거 제주로 유입되었다. 나는 이때 이주한 3-40대의 사람들을 이주 2.0세대 또는 여행생활자라고 정의한다.


매일의 제주 여행자

여행생활자는 크게 세 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첫째. 여행생활자는 제주 러버다. 환경, 인권, 소수자 등 제주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집권 여당을 이긴 곳이 제주이다. 비자림로 도로 확장을 위한 벌목이 단행되었을 때에도, 발 벗고 나서 문제에 대응하는가 하면 해마다 퀴어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인스타그램 피드에 현장 인증 사진들로 도배가 되기도 한다. 둘째. 여행생활자는 적극 여행자이다. 이들은 여행자보다 더, 제주를 여행하는 것에 진심이다. 서귀포에서 종종 탑동으로 넘어와 숙박을 예약하는 제주 도민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 역시, 1년에 3-4번은 다른 지역에 숙소를 잡고 제주 여행을 한다. 그뿐 아니라 제주 곳곳,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자신만의 히든 스팟을 찾아 탐험한다. 셋째. 여행생활자는 시드 고객이다. 제주가 워낙 생활/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어딘가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손꼽아 기다렸다가 오픈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는다. 협재에 문을 연 뮤직 라운지 바 [싱싱잇]의 경우, 제주의 나이트라이프에 간절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픈 3개월 전부터 지인들과 서로 싱싱잇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기도 했다. 오픈 행사는 말할 것도 없지. 내가 아는 제주 친구들이 전부 갔나 싶을 정도로 제주 도민의 축제였다.

여행생활자는 여행자에 비해 적은 숫자일까. 제주 이주 3년 차까지만 적극적 여행생활자라고 가정해 볼 때, 최근 3년간 입도한 이주민 숫자는 약 3만 6천 명으로 매일 입도하는 여행자의 85%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4박 5일이 아니라 매일 제주에 살고 있다.


시드 고객의 중요성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서 Bar로 들어오는 힙한 로컬. 호스텔 1층에 Bar를 기획할 때, 내가 정했던 페르소나 중 하나이다. 오픈 후, 일주일이 지났을까. 가설이 증명되었다. 산지천변을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가던 사람이 Bar를 발견하고 입장했다. 제주 이주 2년 차, 취미로 롱보드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왜 이제야 이런 곳이 생겼냐며 아쉬워한 그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고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코로나 확진자 발생 문자가 오는 날이면, 객실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지만 1층 F&B의 매출은 단골 도민들의 방문 덕분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행생활자 그룹을 공간 비즈니스에 타겟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유의미한 결정이었다. 단골 고객으로서 고정적 매출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나아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로 확산되는 스피커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시드 고객 효과이다. 시드 고객은 초기 매출을 견인하고 충성 고객을 유입시키는 촉진자로, 매우 중요한 고객군이다.


사드와 코로나의 교훈

제주에서 관광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외부적인 요인에 사업이 크게 휘청이거나 직격탄을 맞아 폐업에 이르기도 한다. 사드 사태 때에 약 300만 명에 달하던 중국인의 방문이 뚝 끊기면서 제주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는 차치하고, 이와 관련된 사업자들이 소멸하다시피 했으므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외부적 요인이 주요한 리스크인 셈이다. 개별 관광객이 다시금 관광 수요를 견인하며 제주의 관광객 수가 점차 회복되는 중에 발생한 코로나는 또 어떤가. 속절없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코로나의 해인 2020년, 전년대비 30%의 내외국인 관광객이 증발한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경험하고 있다.

요즘은 흑돼지와 백돼지를 함께 파는 고깃집이 많다. 밤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심야식당도 곳곳에 늘어나고 있다. 구제주, 노형동, 아라동, 이도동 등 제주도민들이 밀집된 지역에 새로운 공간 비즈니스가 활발하다. 나열한 몇 가지 현상의 공통점은 제주 도민들을 타겟팅 한다는 점이다. 89만 명의 도시 제주에는, 여행자뿐 아니라 생활자 그리고 여행생활자가 살고 있다.



참고자료

<관광객_명>

2020년 총 입도객 : 10,363,561 / 2019년 15,286,136

2020년 일 평균 입도객 : 28,393 / 2019년 41,879


<관광산업 매출_십억 원>

2018년 관광산업 매출 : 83,720

2018년 지역 내 총 생산 : 199,109


<거주 인구_명>

2009년 제주 인구 : 567,913

2010년 제주 인구 : 577,187

2020년 제주 인구 : 696,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