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으론 부족할 때

제주는 지금, 나이트라이프가 필요하다

by 르코

숙소로 들어오는 투숙객들의 손에는 늘 이슬 맺힌 편의점 봉다리가 들려있었고 치킨 배달원은 매일 밤이면 호스텔을 찾았다. 다음 날, 청소를 위해 객실 문을 열어보면 먹다 남은 치킨 냄새가 진동하고 따지도 않은 캔맥주가 여럿이었다. 제주에선 밤에 할 게 없어요. 어느 30대 초반의 여행객의 하소연이다. 밤이 되면 가게는 일제히 문을 닫고 불빛이라곤 먼바다 한치잡이 배의 화려한 조명뿐이니 여행지에서도 치맥의 은총이 필요한 것이다. 제주 여행자의 티맵에 찍힌 검색어 1위가 치킨이라니. 역시 치킨 공화국답다.


대도시의 나이트라이프

대도시 여행은 밤이 즐겁다. 골목골목 숨어 있는,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술집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네의 유명 펍을 차례로 방문해 맥주를 즐기는 펍크롤은 대도시 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젊은 여행자들의 밤 문화이다. 전 세계 1위의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에는 나이트라이프 카테고리가 아예 따로 있다. 이곳에는 펍크롤을 비롯해 와인 시음, 야경투어, BBQ크루즈 등 다양한 나이트라이프 콘텐츠가 판매되고 있다. 익히 알만한 뉴욕의 밤은 어떨까. 뉴욕시는 야간문화주도관리 부서(Office of Nightlife)를 따로 두고 연간 약 40조 원의 야간 문화 시장의 성장을 서포트한다. 24시간 교통수단 네트워크의 교통 인프라는 뉴욕의 밤을 더욱 뜨겁게 만든다. 대도시의 경우 높은 인구 밀도와 이에 따른 기반 시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구 70만에 못 미치는 제주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생활 인프라가 비교적 잘 형성된 지역이라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고객의 니즈 앞에 해결 못할 일은 없지 않은가.

호스텔 운영 당시, 투숙객의 체크인이 가장 활발한 시간이 20-21시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도착하는 고객들이다. 이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해변 산책과 같은 가벼운 야외 활동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객실에서 치맥을 먹거나 호스텔 1층 Pub에서 맥주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밤에 할 게 없다던 투숙객의 하소연은 그래프에서도 확인된다. 밤 9시 이후*의 카드 소비액이 전체의 10% 수준이다. 운영의 경험에서 여행자의 취침시간을 고려해보건대, 매력적인 나이트라이프 콘텐츠라면 여행자의 3시간(21-24시)을 가져올 수 있다. 나이트라이프를 원하는 사람이 많냐고? 제주관광공사에서 실시한 [제주 야간관광활성화를 위한 조사]에서 야간 관광 참여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80.9%가 그렇다고 답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야간관광을 18시 이후로 정의함. 필자의 경우는, 저녁식사와 이동시간 등을 제외하고 콘텐츠가 빈약한 시점인 9시 이후를 나이트라이프라고 정의함


야시장으로 확인된 니즈

제주 최대의 재래시장인 동문시장은 매일 약 2만 명이 찾는 제주의 핵심 관광자원이다. 공항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육지로 돌아가기 전 감귤, 초콜릿, 오메기떡, 옥돔 등 제주 특산품을 사려는 여행자가 많이 찾는다. 수산 시장은 인근 호텔, 게스트하우스 투숙객들의 필수코스로 딱새우 회 포장의 메카다. 동문시장이라는 브랜드는 제주의 원츠에 포함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2018년 3월, 동문시장 야시장이 개장했다. 나이트라이프에 굶주렸던 여행자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일 평균 9,500명이 방문했는데, 이는 전국 11개 야시장의 평균 2,700명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밤 시간 즐길거리가 부족한 제주의 여건이 반영된 결과이다. 동문 야시장은 18시에 문을 열지만 가장 붐비는 시간대는 20~21시경이다.



나이트라이프 콘텐츠의 필요성

MZ세대는 제주의 재방문, 체류형, 개별 여행의 현상을 견인한 주요 방문객이다. 과거 패키지 관광 시절 제주에 뿌리내린 콘텐츠의 변화가 절실한 이유이다. 일례로, 바닷가의 횟집거리는 MZ세대가 회를 먹기 위한 최적의 솔루션은 아닐 것이다. 2013년, 인적 드문 골목의 10평 가게에서 시작한 미친부엌은 현재 대 도로변의 2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대개는 웨이팅을 해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다. 호텔 1층에 있는 투숙객 할인 펍은 맥주가 아니라 분위기를 마시고 싶은 MZ여행자에게 충분한 만족을 제공하지 못한다. 협재에 위치한 싱싱잇은 택시를 타고 1시간을 달려서라도 다녀온다.


나이트라이프 콘텐츠의 입지

1) 도보로 접근 가능한가?

2) 나이트라이프 콘텐츠 set이 도보 20분 거리 내에 존재하는가?

3) 여행자와 지역민 모두 접근 가능한가?


위 세 가지 질문은, 베드라디오의 공간 기획 당시 나이트라이프 콘텐츠의 입지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설정한 질문이다. 1)은 술을 판매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충족되는가를 판단한다. 택시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하는 싱싱잇보다는 도보로 갈 수 있는 싱싱잇이 낫다. 2)는 밤거리를 해메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인데, 설명하자면 이렇다. 밤 9시, 1차는 기분 좋아질 정도로 가볍게 마시기 위해 펍을 간다. 여기서 다음 갈 곳이 없다면, 그것은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한다. 2차는 좀 더 진한 포차나 이자까야등이 필요하다. 3차는 와인/위스키와 같은, 조용하지만 눅눅할 만치 짙은 곳이거나 클럽이나 노래방처럼 아예 밤을 하얗게 태워버릴 업템포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세 가지의 공간 콘텐츠가 나이트라이프에 필요한 최소한의 set이며 도보 20분 거리 내 있어야 가장 효과적이다. 을지로를 떠올려보면 쉽다. 마지막으로 3)의 질문은 고정 매출과 공간 분위기 연출에 있어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지역민은 단골이 될 수 있고 단골이 자주 찾는 공간은 고정 매출을 일으킬 뿐 아니라, 인테리어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현지의 자연스운 공기를 만들어 낸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원도심과 나이트라이프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에서 나이트라이프 콘텐츠가 발달하기에 최적의 입지이다. 탑동 해변에만 300 객실 이상의 중대형 호텔 4곳이 있으며 동문시장 야시장을 방문하는 일 9,500명의 거대 배후 수요를 가졌다. 건입동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고 제주시청 지역까지로 확장하면 거주 인구는 훨씬 늘어난다. 즉, 여행자와 지역민의 유동인구 및 인구 밀도가 제주 전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 외에도 수 백개의 숙박/식음 시설이 밀집되어 있어 도보 20분 내 충분한 생활/여행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제주도에서 실시한 야간관광 사업지 조사에서도 제주 원도심이 적합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원도심의 입지적 특성으로 인해 나이트라이프 콘텐츠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맥파이, 미친부엌, 올댓제주는 1세대 격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멜튀김 전문 펍인 멜맥집을 비롯하여 칠성통에 자리한 동남아풍 술집 일도가공도 손님 몰이 중이다. 356평 규모의 베드라디오 2호점의 경우는 호스텔 전체 컨셉을 나이트라이프로 설정하고 개발을 진행했다. 2층부터는 객실, 지하에는 다방 컨셉의 DJ 클럽, 1층에는 제주에서 생산되는 모든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펍 겸 이벤트 공간으로 기획했다.(아쉽게도 코로나 이슈로 개발이 중단됐다.)


Bar를 운영할 당시, 손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가 흥이 오르면 문을 닫고 음악을 크게 틀어 춤판을 벌이곤 했다. 문 닫을 시간인 자정이 되어도 도무지 흥이 식지 않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클럽으로 넘어가 새벽까지 밤을 불태우곤 했다. 치맥으론 도무지 해결이 안 되는 투숙객들은 아.. 숙소에 클럽 있었으면..하고 넋두리를 해댔다. 제주는 지금, 나이트라이프 콘텐츠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