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건축가
이제는 선배들이 지어 놓은 건물들이 무너져야 너희들이 먹고살 수 있을거다.
건축과에 다니는 형이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한 말이라며 내게 알려줬다. 90년대 중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연달아 붕괴되는 참사를 목격했다. 멀쩡한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전문가로부터 확인 사살을 받은 것만 같았다. 지금 와서 다시 곱씹어보니, 교수라는 사람의 의식과 말의 수준이 가관이다. 아무튼,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고도 성장기, 이미 지어질 건물들은 다 지어졌다는 말을 (저렴하게) 표현한 것이다.
중 2 때,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은 일밤의 [러브하우스]였다. 비포 에프터의 시각적 반전에 거주자의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녹여낸 뻔한 클리셰이지만 알고도 당한다고. 매번 빠바바바밤~ 빠바바바바밤~ 음악이 나오면 무조건 반사처럼 감동이 밀려왔다. 같은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공간으로 바뀐 것을 보며 당사자뿐 아니라 시청자도 함께 낡은 집에서의 설움을 삼켜내곤 했다. 아이들의 책방이 소개되는 부분에서는 부러움에 끝내 지고야 말았다. 공간의 쓸모를 새롭게 설계하고 척척 만들어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보며 처음으로 직업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생기부의 장래희망을 내 손으로 직접 적게 되었는데 줄곧 같았다. 디자이너. 공간의 쓸모를 새롭게 하여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언제나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이동을 하는, 모든 순간이 공간에 속해 있다. 공간의 쓸모에서 비롯된 일상의 모습이다. 건축물의 수명에 비해 공간이 가진 쓸모의 생애는 짧다. 고도 성장기에 공간의 쓸모를 만들어내는 일은 건축가의 몫이었다. 집, 상가, 백화점, 사무실 등 기능에 입각한 비교적 단조로운 쓸모가 필요했고 건축가는 이에 합당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주거, 쇼핑, 업무의 형태는 변화했고 문화생활의 영역이 급격히 성장했다.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추가적인 카테고리가 생겨난 것이다. 기존의 공간을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맞게 바꿀 필요가 생겼다. 기존의 건물을 쓸모에 맞게 부분적으로 바꿨다. 아예 부수고 다시 짓기도 했다. 리모델링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TV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건물을 지어놔도 분양이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공실에 마음이 급한 건물주는 낡아서 그런가 싶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동원하여 리모델링을 싸악 해놔도 임대 딱지는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아니, 건물만 지어두면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던 때가 있었는데… 건물이 있어도 속이 탄다. (그래도 없으면서 타는 것보다 있으면서 속이 타고 싶다.) 니즈가 아니라 원츠의 시대이다. 니즈의 시대에 건물 짓고 리모델링해봤던 건물주의 방식이 원츠의 시대에 작동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공간의 쓸모를 확대했다면 취향은 공간의 쓸모를 세분화했다. 이미 필요한 것은 다 충족된 상태이다. 이제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섬세한 공간의 쓸모를 만들어야만 공실을 공포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 기획자가 등장했다. 대형 빌딩 지하에 한 끗 더 세련된 푸드코트를 기획한 회사는 이제 유니콘을 바라보고 있다. 운영까지 직접 하는 공간기획회사는 대기업에서도 찾을 만큼 연일 상종가다.
코로나 시대의 건축은 공간기획이 아닐까. 결국 공간의 쓸모를 누가 만들어내는가가 핵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