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미술관의 소소한 풍경

by 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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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은 ‘우동집’인데, 자리가 협소하고 오랫동안 앉아 대화 나누기는 어려운 곳이라 한식집 소소한 풍경으로 정했다. 사전에 리서치를 해보니 맛은 soso인 듯했지만. 사진으로 본 식당의 분위기는 일요일 오후 1시에 우리가 가기에 딱 좋은 듯 보였다. 항상 식사할 곳을 선택할 때는 언제 누구와 가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날 함께할 멤버는 전시 보기 전 먼저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싶어 선택했다.

부암동 초입의 북적임에 비해 식당은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서 조용했다. 마당에도 테이블이 있고 주변에 녹음이 짙어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 코스를 주문하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와 기분이 좋다. "와 좋다"라고 외쳤다. 바람 불면~ 기분 타쎄~ 나도 모르게~ 축배를 들고자 대낮 맥주를 주문했다.

음식 맛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요즘 맛있는걸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럴지도). 그것보다는 바람과 풍경과 정갈한 음식으로 인해 행복함이 한껏 무르익어, 어색함 없이 서로 웃으며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이런 게 맛집 아닌가. 줄 서서 북적북적 먹는 곳은 맛집 아니고 기념집. 전날의 힘듦을 금세 잊을 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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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규승 건축가가 설계한 환기미술관의 첫인상은. 낡았다. 스틸은 녹슬고 외벽은 때가 한껏 끼어있다. 콘셉트이겠지? 내부의 동선은 올라가는 곳과 내려오는 곳이 다른 구조로 관람에 썩 좋다. 군데군데 외부의 빛이 드는데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매력적인 빛으로 산란한다. 또 하나의 작품인 듯 재밌다.

작품 감상에 앞서 미술관의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식당이든 미술관이든 핵심 콘텐츠(작품, 음식)가 있고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유무형의 인프라가 있다. 각종 편의시설들과 서비스 말이다. 이 요소들이 잘 뒷받침되어야 우리는 최적의 환경에서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다.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환기미술관의 서비스는 한마디로 ‘좋지 않다’. 티켓부스의 직원은 불친절했고, 도슨트는 시작 지점에서 그 자리에 꼼짝 앉고 서서 30분 동안 책 읽듯 빠르게 3층 전체의 작품을 훑어 나갔다. 이게 대체 뭐하는 거지? 휴일 오후 3시에 4명의 관람객에겐 정상적인 서비스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일부러 도슨트 시간에 맞춰 방문했건만) 1년에 환기미술관을 몇 번이나 찾을까? 한 번가 면 많이 가는 거라 미술관은 단 한 번도 소홀해선 안된다는 게 내 생각. 결국 도슨트를 포기하고 따로 관람을 했다. 이런 부분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건 작품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독립된 공간에 설치되어 작품 간의 간섭 없이 오롯이 그것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특히 좋았다. 3층에 설치된 로빈 미 나드의 작업은 꾀나 인상적이었는데, 파란빛만이 전부인 흰색의 공간. 몽환적 빛이 스며들어 공간의 경계가 모두 사라지고 사운드는 이를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좇던 작품은 없다. 작품 속에 들어가 내가 상상하는 것이 작품이 된다. 김치 앤 칩스의 맵핑 작업 앞에서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까지도 해볼 수 있었다. 이런 게 정말 관람의 재미고 작품이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술 식당에서 정말 좋은 전시 관람의 문화를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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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부암동의 저 집(젓가락 공예방)과 계열사(치킨)를 찾았는데, 메인 코스 만큼의 감동이 있었다. 부암동을 찾는다면 꼭 함께 들러보길 추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한 두 번째 미술 식당. 또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나눌 수 있었던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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