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지 말자

by 르코

강의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멋진 일일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이 멋진 일이 정말로 멋진 일이 되게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을 꿈꾼 것도 아니고 임용고시 등의 행정적 절차를 밟은 것도 아닌데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는 내 마음가짐을 어지럽힐 것이 분명했다. 일한 만큼 벌고, 노력한 만큼 얻고, 꿈 꾼만큼 이루어지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 말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시야를 갖게 하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고민할 기회를 준다. 기존의 나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긋난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일은 나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케이, 그다음은? 나에게 좋은 일이 학생들에게도 좋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냥 가서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됩니다."라는 솜털처럼 가벼운 의견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래의 두 가지 상황을 보면, 나는 분명 학생들을 위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상황 A>

-나 올해부터 대학교에 강의 나가게 됐어. 어떻게 생각해?

-와. 잘됐다. 멋진 일이네. 잘해봐

<상황 B>

-대학교에 계약직 시간 강사 비율이 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러게. 학생들은 무슨 죄니. 죽어라 공부해서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갔는데 시간 강사들한테 배우게 되니 말이야


두 가지 질문은 같은 상황을 다르게 표현한 것인데 대답은 정반대이다. 나는 A에도 해당되고 B에도 해당이 된다. 친구에겐 멋진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죄 없는 학생에게 못할 짓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간강사냐 정교수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을 할 것인가'이다. 두 가지 상황은 모두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대답들이다. 수업이 어떤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가르치는지에 대한 질문 없이 보이는 즉각적인 반응들이다. 그래서 어떻게 수업을 할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고정관념에 여지없이 들어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학생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이 뭘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다. 교육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10년이 넘도록 교육을 받았으니 학생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찾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가르치지 말자'이다. 회사를 창업하고 약 5년이 흐른 지금, 떠올려 보면 여기까지 내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지했기 때문이다. 사업자 등록하는 것부터 기업가정신이니 하는 심오한 영역까지 나는 '1'도 아는 것이 없었다. 10년이 넘도록 떠먹여 주는 교육에 익숙한 나에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창업의 현실은 '가르침' 그 자체이다. 모르기에 알아야 했고, 안 해봤기에 해봐야 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로 얻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떠먹임으로 얻은 대학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퇴를 하지 않았나.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대학에서의 배움이라면 배움이랄까.


그래 되도록이면 가르치려 하지 말자.

학생들과 첫 수업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스스로 만들어 각자 진행하기로 했다. 시작하는 지점(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토론하고, 끝이 났을때, 왜 이런 결론이 났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수업에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잘 끌고 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한다. 중간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변수들은 내가 고쳐주지도 답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이렇게 말한다. "네 생각대로 한번 해봐"

학생들은 나에게 거울이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반사되어 나에게 '너도 그렇게 하고 있지?'라고 묻는 것만 같다. 나도 하고 있지 않은 일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가는 하루 종일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참 무서운 곳이다. 학교.

이제 곧 종강이 다가온다. 2015년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학생들과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순간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한말이 기억이 난다. "수업이 있는 금요일이 나한텐 주말 같아". 벌써 그립다. 고마운 아이들.


아. 그리고 군대에서 쓴 내 노트의 목표 리스트에 이렇게 적혀 있다.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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