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의식: 나이나 직책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행위>
올해 초부터 시작된 한예종에서의 수업은 내 마음가짐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평소 '꼰대 의식'을 매우 혐오하는 나이지만 문득 나도 모르게 내뱉는 말들과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남 이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합리화로 순간의 이기를 넘겨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조차 내가 혐오하는 모습일 뿐이다. 학교는 이런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훈련소와 같다. 띠동갑쯤 나이 차의 친구들과 학생과 선생이라는 타이틀로 마주하고 있는 것은 '꼰대 의식'이 발현되기에 안성맞춤이다.
도전해봐. 그 나이엔 실패해도 돼
실패해도 되는 나이는 언제까지 일까?. 이 이야기를 듣는 학생은 과연 실패의 두려움이 사라질까? 학생들에게 도전을 격려하기 위한 조언을 하는 상황에서, 본질(실패의 두려움 극복)은 꼰대 의식에 가려져 버린다. 자신의 무능함과 두려움을 합리화하기 위해 '중년의 나이는 도전이 쉽지 않다'라는 꼰대 프레임에 가둔 채, 권위를 내세우는 일타쌍피의 무능 인증이다. '걱정 보존의 법칙'이라고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있다. 주위 환경이 변해도 내가 하는 걱정의 총량은 변함이 없다. 형태만 바뀌어 똑같이 걱정할 뿐이다. 스무 살엔 스무 살의 걱정과 두려움이 있고, 마흔엔 마흔의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 두 가지 걱정의 경중은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내가 나온 군대가 가장 힘든 거고 내가 하는 걱정이 가장 힘든 것이다. 본인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 걱정은 절대 환경에 의해 줄어들지 않는다. 나이가 마흔이든 예순이든 도전해도 되는 나이다. 실패해도 되는 나이고. 혹여라도 "내가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했을 거다"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면, 무능의 끝.
이건 이렇게 해야지. 다시 해봐.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이다. 언제 불현듯 나올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말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은 1억 년이 흘러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엘론 머스크 같은 인물이 혁신의 상징을 대신한다. 성공한 사람의 뒤를 따라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공식이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문제를 맞닥뜨리고 해결(혹은 실패하고)을 해봄으로써 다음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지혜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학생들에게 내가 찾은 길을 가보라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권위적 태도로 말하게 된다면 더 그렇다.
내 나 이땐 안 그랬는데, 요즘은 편하게 공부하잖아.
2015년을 살고 있는 스무 살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요즘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라고. 공부 열심히 하면 취업되는 시절이니까. 1988년에 추운 날 나무 난로 때어 가면서 공부한 거랑 지금 냉난방기 틀어가며 공부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류의 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말하는 사람의 인성이 드러날 뿐이다.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혐오하는 꼰대 어를 적어봤다. 이외에도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내뱉게 되는 말들이 많다.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말을 많이 한다.) 말할 때는 몰랐다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제야 아........ 탄식이 나오며 반성을 한다. 이런 류의 꼰대 어를 하게 되는 상황을 돌이켜 보면, 학생보다 나를 중심에 둘 때 발생한다. 학생들이 처한 상황의 본질을 헤아린 후 진심을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데, 나를 대입시켜 비교 우위를 점한 뒤(나이에서 오는 경험의 우위), 비뚤어진 언어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꼰대 어를 남발하게 된다. 무섭게도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것을 알아채는 게 무뎌지므로 그렇지 않은 환경을 찾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야 가야 한다. 그리고 일기를 쓰거나 하루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한다.
생각 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