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과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몇 년 전쯤, 전주 국제영화제를 보기 위해 전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태어나 처음 가본 전주는 치열한 서울의 풍경과 달리 고즈넉한 첫인상이었다. 지인들과 전주 시내 이곳저곳을 누비며 영화 관람을 한 후,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광경. OO제과. 저녁을 먹기 위해 전주에 몇 번 와 본 지인이 유명한 맛집이라며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광경. 삼O집
식당 이꼬르 맛집
언젠가부터 우리는 식당을 으레 맛집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네이버 검색창에 '가로수길 식당'이라고 치지 않고 '가로수길 맛집'이라고 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게 해야만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맛집에 대한 대중의 니즈가 크다 보니 관련 웹/앱 서비스들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서비스에 접속해 '가로수길'이라고 치니 가로수길의 모든 식당이 다 나왔다. 모든 식당이 맛집이 되는 순간. 그리고 순위가 매겨진다. 그 순간 맛집은 맛이 아닌 유명세로 평가 받기 시작한다.
맛집 이꼬르 기념집
OO제과에 줄을 선 사람들은 맛있는 초코파이를 기대하고 간 것일까? 그곳에 가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일까? 내 주변의 대부분은 초코파이에 대한 평이 비슷하다. "그냥 그렇던데". 기대는 실망이 뒤따를 확률을 높인다. OO제과의 초코파이가 맛이 있고 없고는 지극히 개인 차다. 맛있다는 사람도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거기 유명하대'라는 말에 줄을 서있는 모습에서 맛의 취향을 논하긴 힘들다. 런던에서 대영박물관(작품 감상 vs 경험 획득 편 참조)의 경험을 획득하는 것과 비슷하다. 맛과는 상관없이 유명하기 때문에 찾아 가고 사진을 남기는 행위는 good, 하지만 그땐 맛집이 아닌 기념집을 다녀온 것이라 하자. 전국 기념집(식당)을 리스트업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맛집 이꼬르 좋은 집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이러한 노력이 쌓이다 보니 나름의 검색 노하우도 생기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지인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레 맛집을 추천받아 데이터 베이스가 두둑한 편이다. 그리고 엑셀로 자료를 정리해둔다. 이렇게 말하면 자료 공유 요청이 쇄도하는데 사실 이 자료는 내가 보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그곳을 가본 경험은 매우 디테일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고 그걸 토대로 추천하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대부분은 내가 장소를 섭외한다. 식사가 좋았던지 이후에도 지인들에게 맛집 추천 요청을 자주 받는다. 추천해달라는 이에게 나는 가장 먼저 '누구'와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 묻는다. 그리고 지인의 성향과 만나는 시간대, 주차 등의 개인 상황을 고려해서 추천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무슨 엄청난 맛집 큐레이터 같다.....) 나에게 맛집은 '좋은 사람과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맛있다'라고 느끼는 범위가 넓은 편이다. 나 역시 미식가가 아니며 대게 평균이상의 맛에 '맛있다'는 표현을 쓴다. 식사는 누구와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사람들과 식사와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라면 최악의 요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문을 나서게 될 것이다. 거기에 요리까지 맛있다면 인생 맛집 등극.
내가 맛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인상 찌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