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과 체부동 가찌 편
차가운 햇빛과 바람이 에워싸는 일요일 오후. 노트북, 와인, 프로젝터가 든 여행가방, 프린트물과 각종 준비물이 그득한 크로스백, 그리고 목에 카메라까지 두른 채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떠나는 양 집을 나섰다. 서촌으로.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지금은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낯선 이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내 사업으로써 일구어 나가다 보니 이제는 미술과 꽤나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미술과 친해져 가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결국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오게 할 열쇠가 되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재작년 가을, 나는 미술식당을 시작했고, 지금 이곳-국립현대미술관-에는 출근 전야의 마음을 다스려야 할 일요일 저녁에, 그것도 영하 8도의 추위를 뚫고 11명의 멋진 관객들이 도착해 열여섯 번째 미술식당을 기다리고 있다.
예술은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
모든 사람이 미술 전공자는 아니다. 작가도 아니다. 그래서 미술에 대한 지적 수준을 놓고 서로 곁눈질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공부하러 간 것이 아니라 감상하러 간 것이지 않나.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예술은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던져 놓은 질문(작품) 앞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찾는 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전시 감상법이 아닐까.
전시관 입구에서 참석자에게 준비한 프린트물을 나눠드렸다. A4용지 한 장에는 전시를 보기 전 한번 쓱 보고 들어가면 좋을 법한 최소한의 정보를 요약해 두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이다. (미술관의 언어는 몇번을 보아도 어렵다.) 이후부터는 스스로 조용히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흑과 백의 이미지들, 다양한 매체들이 뒤섞여 있는 흡사 공사장 같은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과 공간이 이들에겐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증은 근사한 식사를 하며 풀기로.
음식은 미술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요즘의 미술관은 대부분 관내 식당이나 카페테리어가 있다. 얼마 전 찾은 터키의 현대미술관 Istanbul Modern에는 주류를 판매하는 Bar가 있어 눈이 휘둥그래졌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늘 식사를 한다. 하루 세 번이나. 거의 모든 사람은 그 식사의 중간에 미술관을 찾게 된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Glen Lowry관장은 "음식은 미술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식사를 하고 관람을 하든, 관람을 하고 식사를 하든 관람객에게 있어 음식의 경험은 미술관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체부동의 좁다란 골목길, 그리고 또 꼬부랑 샛길을 들어가서야 만나는 복합 문화 공간 '가찌gazzi'에서 미술식당의 두 번째 순서, 소셜다이닝이 시작되었다. 가찌는 건축가, 패션디자이너, 포토그래퍼등 6명의 청년들이 모여 각자의 작업을 하며 따로 또 같이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공간이다. 조용한 한옥에 이들의 밝은 에너지가 가득차 있다.
식사를 하기 전, 와인과 식전 빵을 들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발표를 진행했다. 오늘의 주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준비한 발표였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시는 감상하기도 중요하지만 감상의 결과들을 서로 이야기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내 머릿속에 혹은 가슴속에 있는 감상을 상대방에게 언어로 표현하고, 경청하는 일은 일상에서 늘 연습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기에 미술은 훌륭한 소재이다.
르 코르동 블루 출신의 셰프님께서 프렌치를 남아공 스타일-작가가 남아공 출신임-로 재해석하여 코스 요리를 내어 주셨다. 직접 전시도 보고 오셔서 요리에 녹여내셨다고 하니 감동이다. 요리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고 곁들여 주셔서 눈, 코, 입, 귀가 모두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맛이야 말할 것도 없지. South African onion soup은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익숙한 음식을 맛 본 기분이였고, 생면 파스타를 가니쉬로 올린 Coq au vin은 화려함보다는 편안한 모습이 이곳 한옥을 닮아 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은 또 어찌나 달콤한지... 준비한 와인이 어느새 동이 났다.
한겨울의 정취를 품은 한옥, 스스럼없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멋진 사람들, 적막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음악, 노란 조명을 담은 화이트 와인, 그리고 맛있는 음식.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오늘 본 미술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미술식당은 전시와 다이닝을 결합한 맞춤형 문화 생활 코디네이션 서비스입니다. 전시를 보고 소셜다이닝을 즐기며 미술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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