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리다

언어의 힘

by 르코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 여성에게 물었다. "요즘 행복하세요?"

정적이 흐른다. 보아하니, 표정이 굳어지고 (아마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매일같이 질문한다. "오늘 행복했니?"라고.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행복'은 마치 만나지 못하는 이상형처럼 멀찌감치 두고 오늘을 살아간다.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에서 소개팅은 물 건너갔음을 직감했다. 아무렴. 나는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언어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상황을 확정하고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오글거린다'라는 말이 생긴 후로 사람들은 진지한 말을 못 한다. 이 단어가 생기기 이전에도 이런 류의 대화를 기피하긴 했었으나 이 '적확한'언어로 인해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연인 사이, 친구 사이, 직장 동료 사이에서 꼭 해야 할 말들을 오글거림 상자에 봉인시켜 버렸다.


연인 사이에 "사랑해", "넌 너무 아름다워"와 같은 표현은 가방을 선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유대관계를 만들어 준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고 안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내 마음 알아주겠지'하다가는 오해가 겹겹이 쌓여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도 모를 난제에 봉착하게 된다.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언어의 힘이 더욱 강력하다. 미숙한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꿔보자고 모였으니 열정은 충만한데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가게 할 시스템이 부재하다. 서로의 역할이 모호하니 일이 터지면 책임소재는 어떠하리.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CEO는 주커버그처럼 직원들을 모아서 "나는 너희들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봐!"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할뿐더러 꺼낸다 해도, 직원들이 "그래. 네 생각이 맞아. 우린 더 좋아질 수 있어!"라고 못한다. 왜 영어는 되고 한국어는 오글거리나.

사랑도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말(언어)이다. 상황을 발전시키는 것도, 반전시키는 것도 말 한마디이다. 위기의 순간에 팀원끼리 외친 파이팅은 억만금의 돈으로도 할 수 없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 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게 할 것이다.


나는 내 꿈을 말하고 적어 둔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비전을 말하고 적어 둔다. 그러면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