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미술관과 아방 뮤제 편
2월의 마지막 날 이브. 봄이 올 때도 됐는데 구무 죽죽 한 하늘에 찬바람까지 휑하니 불어 제쳐 도무지 흥을 돋우기 힘들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백골이 진토 되진 않겠지만 나는 호스트인 것을. 하여간 수트 자락 휘날리며 반가 웁게 출바알...하기가 무섭게 솜털 같은 눈발이 가로로 지나간다. 눈이 내리는 것인지 내가 하늘로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 알길 없지만 이 와중에 낭만 있다. 흥이 돌아온다.
리움에 도착하니 하얀 눈밭에 솟구친 아니쉬 카푸어의 모둠 동그랑땡이 눈에 띈다. 수십 번 다녀가 익숙한 탓에 그곳에 여직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지만 오늘은 하얀 눈을 담은 그것이 썩 아름답게 보인다. 어쩌면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야속해서 더 그런 걸 지도. 어쨌든 눈 내리는 미술관은 언제나 옳다. 가시지 않은 낭만을 만끽하고자 리움의 카페테리아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하고 조용한 미술관에 앉아 밖에 눈이 펑펑 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기분이 적당하다. 얼마간 후, 오늘의 미술 식당을 함께 할 5명의 낭만 관객을 맞이 했고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전시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나는 이들과 헤어지고 말았다. 인상비평이라 했던가. 30분간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냥 보는 시간이다. 작가나 전시 의도에 대해 알고 보는 것도 좋지만 그냥 느낌대로, 필 충만하게, 내 멋대로 뜯어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다. "이건 언제 누가 이런 의도로 만든 작품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작품을 보게 되면 미술관을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시 기획자의 프레임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전시는 이렇게 저렇게 막! 마음대로 보다 보면 나만의 감상법이 생기고 그때부터 다른 사람의 관점과 비평을 '다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나 역시 미술의 '미'자도 모른 채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되었고 뻔질나게 이곳들 드나들며 남들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전시 감상법을 익혔다. 익혔다? 그렇다.
30분 후, 간단하게 관객들에게 전시가 어땠는지 질문했다. 물론 그 순간 길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진 못하였지만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전시 요약문을 스마트하게 폰으로 전송하여 드리고 나의 전시 관람법과 관점을 이야기했다. 이제부터 1시간 동안은 일개 원 오브 뎀 일 뿐인 나의 관점과 각자 감상의 기억들을 비교하며 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관객들의 관점도 질문할 수 있으리라. 전기 비평이라 했던가. 나의 관점과 더불어 어느 정도의 팩트들을 알려드렸다. 나의 감상을 베이스로 하여 그 위로 갖가지 관점과 팩트들이 중첩될 것이다. 미술관에서 젊잔 떨 필요 없다는 나의 생각을 매우 강력하게 실천하신 한분의 관객 덕에 우리는 역대 손꼽힐 지도 모를 자유분방함을 선보이고 ㅠㅠ히 리움을 퇴장했다.
아방 뮤제. 어쩜 이름도 그러니. 그래 미술식당의 컨셉을 충실히 따르는 이 조합으로 결정. 7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식당. 감성충만한 전시의 여운을 반전시키며 우리가 굶주렸단 사실을 일깨워 줬다. 다행히 춥고 솜털 펑펑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웅성이는 것이 오늘이 일요일 저녁임을 조금은 잊게 해줬다. 인간이므로 배고픔은 조금 뒤로 미루고 온 몸에 흐르는 이 감상의 기억들을 이제 정리할 시간. 간단한 발표를 진행하고 조금 더 거시적 관점에서 전시를 내려다봤다. 나와 누군가의 감상이 중첩된 감상의 합을 정리하기엔 뒤로 물러나 보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아름다운 대화를 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니 누가 이들을 전시 초보자라 한단 말인가. 자신이 본 것, 느낀 것을 나누며 아~ 아~ 하는 것. 대화의 묘미란 정말. 식사가 뭐가 나와서 언제 들어가 버렸는지(물론 맛있었다. 그 와중에 맛은 느껴야 하니까) 모를 만큼 오늘의 미술식당 관객들은 2따봉.
그나저나 오늘 눈이 온 것은 배병우 작가의 눈 내린 종묘의 숨 막히는 고요를 암시하는 복선이었단 말인가.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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