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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iam Dec 19. 2022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포르투 : 포트 와인, 세상은 늘 같지

 도우루 강에는 사람을 실은 유람선과 더불어 와인 통을 실은 배들이 종일 오갑니다. 포르투는 전 세계에서 유명한 와인 수출 지역입니다. 도우루강변에는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줄지어 있고 강변 어떤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도 질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습니다. 포르투 와인은 포트(porto)와인이라고 합니다. 굳이 포르투가 아니라 포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국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백년 전쟁 이후 프랑스산 와인을 수입하기 곤란해진 영국이 런던에 가까운 포르투갈 도우루강 인근 와인 산지에서 와인을 구해 산적하기 시작했대요. 영국 사람들은 새로운 와인 산지인 porto를 영국 발음인 ‘포트’로 불렀는데 이 때문에 포르투 와인을 지금도 ‘포트와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포르투에서 영국으로 운송을 하던 초기에는 날씨 때문에 와인이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래서 도수가 높은 브랜디나 와인을 증류한 주정을 첨가해서 도수를 높였어요. 이를 ‘주정강화 와인’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포르투 와인은 도수가 20도 가까이 이릅니다. 다만 과일향이 풍부해서 도수가 높아도 맛이 참 달콤합니다. 입안에 확 퍼지던 첫 모금의 달콤함을 이야기하자면,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라고 말하던 목동이 되는 듯했습니다. 유난이 맞습니다.  


 저는 포르투에 있을 때 유명한 와이너리 중에 하나인 샌드맨(Sandeman)이 운영하는 호스텔에서 2주를 지냈습니다. 숙소에서 지내는 외국인들은 사물함에 와인 한 병을 챙겨두고 밤이 되면 와인을 꺼내 라운지에 앉아 서로 즐기곤 했습니다. 저에게는 같이 한잔하자며 묻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습니다. 언어가 서툴러서 물어봤어도 맹하니 웃기만 했을 것 같긴 해요. 뭐, 다행인지. 포르투를 떠나기 며칠 전, 순례길을 걸어오신 한국 분을 만났습니다. 보자마자 ‘와인 많이 드셨어요?’ 물으셨어요. 그리고 같이 와이너리에 가자고 하십니다. 한국에서는 이 돈으로 구할 수도 없거니와 돈이 있어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L 님은 한국에서 선물할 와인 몇 병을 사 간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옆 건물인 셀러에 처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강변 카페에서 에그 타르트를 포함해 2, 3유로에 와인 한 잔을 마시곤 했는데, 와이너리에서는 루비나, 토니 와인 한 병이 8유로였습니다. 아, ‘또 나만 몰랐다.’ 심지어 가장 상위 라인인 20년산 호박빛 와인도 30유로에 살 수 있었습니다. 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마신 와인값을 종합해 보니 20년 산 와인을 두어 병 마셨겠던걸요. 나만 빼고 끼리끼리 모여 와인 마시던 외국인 친구들이 얄미웠습니다.

포르투를 떠나기 전날, 부모님과 친구에게 선물할 20년 산 샌드맨 와인을 한 병씩 샀습니다. 샌드맨 포트와인은 숙성이 될수록 호박빛이 돌아서 신비로왔어요. 그리고 저를 위해 10년 산 샌드맨 와인을 샀습니다. 혼자 마시려다, 양도 많고, 얄미운 외국인 친구들이 생각나서 동행을 구해 함께 마셨습니다. 같이 와인을 마신 분은 변호사 시험을 마치고 포르투에 오셨데요. 늦게 진로를 바꾸시고 고생을 조금 하셨답니다. 이제 곧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데 너무 긴장이 되어서 한국에서 머물 수가 없었다며 웃으셨습니다. ‘그렇죠, 포르투는 잠시 잊기 좋은 곳이죠.’. 나누어 마신 와인은 더욱 달콤했습니다. 잔이 잠길수록 모루 정원은 평화로웠습니다. 누군가의 노랫소리와 노을도 깊이 물들어 갔습니다. 저는 도무지 아쉬울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복을 나눠드릴 테니 꼭 합격하시라고 빌어드렸습니다. 그런데, 합격해도 행복하지 않으실 것 같대요. ​


‘저는 변호사가 되더라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변호사가 되면 또 좋은 일과, 슬픈 일들이 있을 거예요.’

‘그럼 왜 그리 뒤늦게 진로를 바꾸어서 변호사가 되실 생각을 하셨어요?’

‘변호사가 되면,’​


 그 뒤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어떤 동기와, 가족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긴 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적을 수가 없네요. 아마 좋은 일과, 슬픈 일이 반복될 거란 사실이 그 모든 이야기를 감춰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세상으로 진입하든, 그 안에서는 세상은 또 좋은 일과 나쁜 일로 분화됩니다. 뭐 별다를 게 있나요. 그래도 제 복 다 밀어드릴 테니 꼭 합격하시라고 빌어드렸습니다. 이후로 아쉽게 연락이 끊겨서 합격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종종, 노을을 생각하면서 잘 살고 계시면 좋겠네요.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포르투를 떠나서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포트와인을 구할 수 있을 땐 늘 한 병이나 두병을 사서 마셨습니다. 단 맛이 따뜻하게 몸에 퍼지면, 사랑한다는 말도 나누기 편했습니다. 라고스에서 만난 칠레 형님은 ‘포르투 와인은 너무 달아, 와인은 칠레산이지’라고 말씀하셨지만, 다 애국이라 생각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정말 유일하다’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하라의 별빛, 다 같이 손잡고 머물던 라스 아브갈룸의 바다 그리고 누브라 벨리에서 만난 버펄로 떼. 포르투 와인은 그중에 하나입니다. 칠레형도 마음속으로는 알고 계실 겁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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