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iam Dec 23. 2022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포르투 : 보편적 과정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달을 살걸.’ 포르투는 참 좋았습니다. 2주를 머무르기엔 아쉽던걸요. 모루 정원에서 바라보는 노을, 에그 타르트, 포트와인, 베이스에서 마시는 맥주, 사람들의 표정, 거리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는 왜 이제서야 유럽을 찾았을까 걸음을 부산하게 했어요. 하지만 어제, 오늘, 내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 이도 조금씩 지루해집니다. 파리는 8일을 있어도 보지 못하고 남겨둔 곳이 많았는데, 작은 도시인 포르투는 다섯 밤 정도를 보내니 더 이상 새롭지 않아요. 처음 여행할 때는 ‘여행 = 사진’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을 지배하던 터라,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이 남겨야 하는데,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네. 기껏 나왔는데, 너무 아깝다.’ 불편한 생각은 한 번 피어나니 겁잡을 수없이 퍼졌습니다. 질린 풍경은 옷장에서 몇 계절이나 잊힌 옷처럼 도무지 눈길이 가질 않았습니다. 쓸모가 사라졌어요. ‘아, 파리나 더 있을걸, 에펠탑이나 더 볼걸, 못 가본 몽솅미셸이나 가볼걸.’ 잊었던 파리가 생각났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한 달을 살지..?’ 그새 마음 꼴이 변했습니다.



 결국 포르투 일정을 하루 줄였습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만 아니었다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을 줄였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틀을 꼬박 숙소에 머물며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더 줄일 수 없는 포르투 일정에 속앓이를 하면서요. 넉넉하게 생각해두었던 포르투갈, 스페인 일정을 촘촘하게 조정하고, 유란 님이 추천해 주신 사하라 일정을 끼워 넣었습니다. 이렇게 일정을 조정하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편했어요. ‘그래, 이 정도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진 않겠다. 앞으로는 공연히 일정을 늘이지 말자’ 여행 지침을 하나 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둘러서 계획을 바꾸니 별나게도 재밌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파리 한인 민박에서 만나 포르투까지 동행한 세창 씨가 떠나는 밤이었어요.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모루 정원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수더분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더군요. 고개를 돌려 보니 정원 위 편에서 삼삼오오 외국인 친구들이 모여 큰 스피커의 볼륨을 키워 놓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좋을 때야~’ 웃으며 와인을 세창 씨와 나눴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음악 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이 스피커를 우리 곁으로 가져와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엉덩이를 들이밀면서 자극하는데 ‘이거, 이거?’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울려 오랜만에 몸을 풀었습니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야! 포르투는 댄스구나!’ 모루 정원의 가치는 노을이 아니라 댄스에 있었습니다. 세창 씨도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모르는 언어의 유행가는 어찌나 신이 나던지. 파티가 끝나고 헤어질 때, 세창 씨도 포르투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좋아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댄스댄스댄스


 그리고 다음 날에는 혼자 터벅터벅 걷다, 좋아하던 봄별 작가님을 길에서 지나쳤습니다. 봄별 작가님은 사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할 때, 가장 들여다본 한국 작가님이십니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리시는 사진은 늘 톤이 정돈되어 있고 다정했어요. 정갈한 면이 있어 오래 보기 좋았습니다. ‘내 사진결도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 여행하는 동안 줄곧 사용한 24105g 렌즈도 봄별 작가님 영향입니다. 여행렌즈로 주로 사용하신다길래 원래 사용하던 렌즈를 팔고 다운그레이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포르투 낯선 곳에서 길을 가다 마주친 것입니다. 당연히 봄별 작가님은 저를 모르시고, 저는 고민을 했습니다. 아는 척을 할까? 팬이라고 할까? 한 아흐레 전에 파리 생제르맹 스타디움에서 메시를 만났었는데, 메시 볼 때 보다 더 떨리더군요. 고민하다, 말았습니다. 이국 땅에서 낯선 사람이 안다고 말을 걸면 지내기 불편하실 것 같기도 하고, 전날 댄스로 수척해진 몰골은 마주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님을 이렇게 이국 땅에서 만날 수 있다니. 포르투가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될지어다.


 이어서 다음날, 순례길을 마치고 숙소에서 만난 L 님이 들려주신 와인 이야기는 결정적으로 제 태도를 돌려놓았습니다. ‘내가 제대로 포르투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 뒤로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별다를 게 있겠어라며 찾지 않던 와이너리에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듣는 포르투 와인의 역사나, 종류, 제조 방식은 가깝고 생생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밤 동행 분과 함께 마신 와인은 또 얼마나 달았던가요. 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에서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이미 몇 번이나 지나쳤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 유적들의 이야기도 찾아보았습니다.


 포르투 근교에 있는 도시들도 검색했습니다. 기차로 1-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근교에는 포르투와는 조금은 다른 매력을 가진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운하가 아름다운 알베이라도 있었고,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 있는 코임브라도 있었습니다. 특히 코임브라에 있는 동명의 ‘코임브라 대학’을 가면 학생들이 망토를 입고 다닌답니다. 이 망토가 바로 죠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쓸 때 모티브로 삼은 망토라고 하네요. (죠앤 롤링 당신은 대체..) 아쉽게도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보는 사이 포르투 일정이 촉박해져서 근교 도시까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가까운 마토지뉴스 해변에 가서 모루 정원과는 다른 바다의 노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닿을 날이 있겠지’ 하면서요.



 ​이것저것 찾아보니 ‘2주도 부족하겠구나’ 다시 마음 꼴이 바뀌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또 어떻게 일정을 짜지, 조금 애가 타기도 했어요. 진작 잘 다닐걸. 두어 번 마음 꼴이 바뀌면서 포르투에서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만남이 순조로울 때는 설레고, 즐기다, 어느새 단점이 보입니다. 그러다 지겨워 떠날까 싶을 때, 지나쳤거나 몰랐던 매력이 새로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머무르려 하면 이미 때가 지났거나, 상해 있습니다. 보편적 과정입니다. 포르투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종종 느낀 권태와 아쉬움이었습니다. 여행이 정해진 기간 동안 쓸모를 찾는 과정이라면, 포르투에 지내는 동안 더 많은 쓸모를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역시 2주도 부족했을지 몰라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연이 주는 설렘이 여행의 주된 환희이며, 느슨해진 감각은 새것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연이 존재하지 않는 사이에도 새것을 느낄 수 있음은 권태를 대하는 방식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의 시처럼 굳이 찾아야 보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서 꽃잎을 한참 들여다보면 잎과, 줄기가 어울리는 모습에서 흔들리며 피는 삶의 보편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루 정원에서 보았던 노을은 어떻던가요. 노을은 매일 달랐습니다. 빛깔도 달랐지만,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술도 매일 달랐습니다. 그 입술마다 제가 달리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기를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같지 않다는 함수로 매일을 새롭게 두고자 하면 반복은 변화로 변하며, 일상은 일탈로 변합니다. 나은 보편적 과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