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지인
세비야에 도착한 날,
마침 연고팀인 레알 베티스가
17년 만에 국왕컵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온 도시가 축제였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잔뜩 흥분해서
폭죽을 터트리고 틈 없이 붙어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이
2002년 우리 월드컵 때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시절엔, 누구 하나 숨이 터지려는 기미만 보이면
이 세상에 척력이란 없는 것처럼 서로 끌어안고 소리를 질렀었다.
세상에 모든 경계란 것들이 붕괴해버린 것처럼.
금세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좋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기라던데.
땀 흘리며 경합하는 우리 팀 선수를 같이 볼 때나,
번지는 노을, 표표히 날리는 하얀 눈, 어떤 문장들
네 시선이 닿는 세계를 따라가는 동안만이라도
경계를 잊고, 숨 하나를 읊조릴 수 있다면
마음이 꺾이든, 그렇지 않든,
무엇이든 하나로 중첩되어 버리는 거다.
그럼 무엇이든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레알 베티스 유니폼을 살까 말까 망설였던 세비야에서는
하루 동안 여려 군데를 살뜰히 다녔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껴서
세비야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았고
알카사르 앞이나,
스페인 광장에서 플라멩고를 보았다.
초록빛 아늑한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서는
웃는 사람도 넉넉히 보았다.
잠시 경계를 잊은 때도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