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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iam Feb 01. 2023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마드리드 : 마드리드 가는 길, 검색 보다 사색. 

 

마드리드 gran via역 마드리드 가는 날에 비가 많이 내렸다. 

버스는 마드리드로 달렸다. 킬링타임으로 받아둔 영화들은 죄다 지루했다. 영상을 종료하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거세졌다. 그라나다에서 떠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도착해선 비가 그쳐야 할 텐데. 걱정한다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면 좋겠다. 역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빗소리가 여물다. 도착해서도 비가 내리겠네. 별 수 없다. 눈 감을 밖에.


 숨을 몇 번 고르니 지난 장면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일련의 사건들. 어떤 사건은 오발탄 같았다. 우발적이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닌데 결정해야 했다. 결정할 수 없는 일을 결정하기도 했다. 우발적이지 않은 일들은 순리대로 흘렀다. 결정하면 안 되는 일을 결정하기도 했고,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에 결정되기도 했다. 경솔, 자책, 환희, 불안. 밥상에 오르는 김치와 밥처럼 남들 겪는 흔한 감정을 나도 살았다. 그리고 모두에게와 같이, 지나갔다.

비가 그친 마드리드 거리

 모든 사건마다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말없이 자리에서 기다려주었다. 고2 때 가출해서 며칠 만에 돌아왔을 때도, 음악 그만두고 거품을 물었을 때도 그랬다. 그 뒤로도 늘 한결같았다. 추락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친구들은 에어쿠션처럼 나를 받치고 있다. 그들이 내 친구여서 정말 고맙다. 이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 내 일부도 소실된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사라진다면, 그때 나는 이미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닳아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소멸한다면, 덧없을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누리고 있다.


 첫사랑도 있었다. 우리가 만났던 시절에 비가 자주 왔던가. 비가 내리면 우리는 우산 하나를 같이 썼다. 내 어깨 한 쪽은 늘 비에 내주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그렇듯. 그래도 좋았다. 사랑해서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다. 우발적이지만 오발은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므로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 꼭 저 닮은 딸을 낳고 사는 것을 알았다. 그리 오래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라. 나도 그만치 살련다. 물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며 살고 싶었던가.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이라 생각했던가. 그 사이에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 하나 둘 사라졌던가. 눈 뜨기 싫다. 남은 삶은 지난 삶의 반복일까. 아니면 또다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이어질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빗소리가 여전했다. 비를 향한 마음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꺼내 시계를 보았다. 마드리드까지 30분. 미리 받아 둔 임창정 노래를 들었다. 그도 어느새 쉰이 되었다.

마드리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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