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석사 유학생의 복지기관 인턴십 이야기
스웨덴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중 대표적인 하나가 '복지강국'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생애 주기를 고려한 평생 복지제도... 때문에 사회복지정책연구계에서는 스웨덴의 사회복지정책을 이상적임에 가까운 사례로서 자주 참고하고, 그와 관련된 많은 연구자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스웨덴의 사회복지정책들이 이론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고 있는지까지는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알기가 쉽지 않다. 보편적이고 관대한 사회복지체제가 스웨덴 사람들의 삶에 실제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스웨덴의 사회복지기관은 한국의 사회복지기관과 어떻게,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를까? 감사히도 나는 스웨덴에서 석사 유학을 하며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을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는 바로 스웨덴 사회복지기관에서의 인턴십이었다.
오늘 글에서는 너무도 특별했던 나의 스웨덴 사회복지기관 인턴십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인턴십을 하게 된 계기와 배경부터 인턴십 기관에 대한 소개와 그 안에서 내가 수행한 역할, 그리고 인턴십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 글에 자세히 담아보았다.
내가 2021년 가을부터 현재까지 공부하고 있는 스웨덴 룬드대학교 사회복지정책학 (Welfare Policies and Management) 석사과정은 1학년 2학기에 약 2.5개월 기간으로 인턴십 코스(course) 편성되어있다. 다만 프로그램을 통해서 기관들에 연결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이 스스로 인턴십 기관을 직접 서치하고 컨택해서 기회를 만들어내야 하는 형식이다. 학생이 인턴십 기회를 못 얻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턴십 코스는 의무(mandatory)가 아니라 선택이고, 인턴십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대체 가능 수업 목록 중에 선택과목을 듣도록 되어있다.
학생이, 그것도 스웨덴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 학생이, 혼자 알아서 짧은 기간 내에 인턴십 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같은 과 친구들은 일찍이 인턴십보다 대체 가능 수업을 선택했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역시 코로나 이후로 인턴을 뽑는 기관이 더 줄어들어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론수업은 석사 과정 내내 계속 듣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스웨덴 복지 현장을 경험할 기회는 인턴십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조건 인턴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구글링과 주변 스웨덴인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룬드 근처에 있는 공공사회복지기관부터 NGO까지 인턴을 할 수 있는 기관들의 리스트를 만든 후, 이메일로 CV와 인턴을 하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컨택했다. 하지만 모두 답변은 NO 혹은 무응답이었다. 대부분의 이유는 인턴을 현재 뽑지 않는다는 것과 혹은 뽑더라도 특정 프로그램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받는다는 것. 포기해야 하나 싶을 쯤 내 머릿 속에 스쳐지나간 한 기관이 있었다. 바로 학부 시절 스웨덴 우메오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한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사회복지기관이었다.
학부 때도 사회복지를 전공하던 나는 스웨덴 우메오대학교에서 1년 간 교환학생을 했는데, 그때 들었던 한 수업에서 Kärngården이라는 스웨덴의 사회복지기관을 잠깐 방문 및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방문했던 기관에 대한 기억은 흐릿했지만 만났던 기관의 매니저 중 한 명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게 바로 연락을 취하자 놀랍게도 인턴으로 일하러 오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다. 후에 듣기로는 내가 스웨덴에 대한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과 이전에 기관에 잠깐이나마 있었던 경험이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스웨덴 북부 도시 우메오의 사회복지기관에서 2021년 3월 23일부터 6월 3일까지 인턴십을 할 수 있었다.
우선 간단히 내가 인턴십을 했던 Kärngården에 대해 소개하자면, 스웨덴 우메오에 위치한 정신질환자들의 지역사회 내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기관이다. Kärngården은 이용자에게 요일별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고, 그와 별개로 매일 카페와 중고매장 운영을 하며 이용대상자들 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누구나 올 수 있도록 운영된다. 기관 카페에서 판매되는 식음료의 가격이 일반 카페의 절반 가격인 데다가 (커피 한잔에 한화 1000원, 케이크 한 조각에 한화 2500원) 저렴한 중고매장의 특성상 많은 계층의 지역주민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기관은 항상 북적였다. 그리고 다양한 지역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관에서 이용자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이는 학부시절 실습과 봉사활동을 통해 한국에서 내가 경험했던 복지기관들의 형태 (복지대상자만 기관에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와는 상당히 달랐기에 새롭고 흥미로웠다.
기관의 운영방식 역시 매우 독특한데, 모든 직원과 원하는 이용자 누구나 멤버(member)가 되어 멤버 회의를 통해 기관 운영 전반의 의사결정을 하는 멤버십 (membership)제도로 운영이 된다. 멤버십 제도의 기반에는 직원인 사회복지사뿐만이 아니라 이용자들도 주체적인 의사결정자로서 모두가 평등한 관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구조를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 물론 오랜 기간 일한 직원들(Senior Members)을 주체로 위원회(Board)가 구성되어 있지만 기관의 큰 방향성을 보고 제시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많은 사회복지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관료주의적인 체제의 수직관계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인턴 첫 출근날, 나 이외에도 함께 인턴을 시작하게 될 우메오대학 국제학생들이 3명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인턴십에서 가장 큰 나의 역할은 인턴 대표이자 다른 인턴 학생들의 관리자(Manager)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출근부터 매니저라니? 역할의 이름만 들었을 때는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학사생인 다른 인턴 학생들보다 석사생인 나의 인턴 내용은 더 밀도 있어야 한다는 슈퍼바이저(Supervisor)의 생각에 곧바로 납득이 되었다.
다행히도 매니저로서 약간의 추가된 역할을 제외하고는 다른 인턴학생들과 똑같이 일했기 때문에 걱정했던 부담은 전혀 없었다. 매니저로서 해야 했던 일들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첫 째는 다른 인턴들의 일 스케줄을 관리하는 것과 둘 째는 매주 한 번씩 인턴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 셋 째는 인턴의 대표로서 슈퍼바이저에게 회의 내용을 보고하고 필요사항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 이외에는 다른 인턴들과 함께 슈퍼바이저의 지도 아래 기관 전반의 일을 함께 도왔다. 기관의 요일별 활동인 미술치료, 글쓰기, 다양한 정신질환에 관련된 강의 등에 참여해서 이용자들을 직접 만나고 이해하는 것부터 카페에 판매할 케이크를 굽고 중고매장 계산대에서 일하는 것까지 기관 업무 전반에 참여하며 다른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라 인턴십이 일보다 의미 있는 배움과 경험의 시간으로 느껴지며 너무 즐거웠지만, 그럼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언어의 장벽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직접 대하는 사회복지 현장의 특성상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은 인턴십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만난 영어에 유창한 스웨덴인 친구들에 익숙해져서 영어만으로 소통에 충분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넘겨짚었었다. 막상 인턴십을 하면서 만난 이용자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나 있었기 때문에, 때때로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었다. 인턴십은 내게 스웨덴에서 사회복지 일을 하려면 반드시 스웨덴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플래그를 세워주었다.
Kärngården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저는 이곳에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게 정말 즐거워서 놀러 와요."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던지.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전형적인 사회복지사의 모습(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과 상반되는 말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이 어떻게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일터를 즐길 수 있는지 그 기반을 들여다보자, 기관이 가장 중요하게 지향해오던 수평적인 관계가 보였다. 서로 직위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모두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기관에 오는 모든 개인이 존중받는 문화가 그들에게 일터를 안전하고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인턴십을 하는 동안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집에 초대받아 다 같이 모여 저녁식사를 한 적도 많았고,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기관 운영이 끝난 후 기관 내부를 노래방처럼 꾸며서 파티를 하며 기관의 사람들과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다.
일 끝난 후 노래방으로 변신한 기관 (photo by 온리워니)
스웨덴의 사회복지정책은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 아래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성격과 지방자치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내 긴밀한 협력관계를 그 강점으로 하는데, 인턴십 경험을 통해 나는 이 두 가지 강점 모두 실천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로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사회복지의 성격은 모든 지역주민의 접근성을 높인 복지기관의 운영형태에서 드러났다. 매일 출근해서 만난 이용자들은 기관에 폐쇄적으로 분리되어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내 일원으로 통합이 되고 있었다. 특히 그림을 무척 잘 그리시는 한 이용자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기관에 올 때마다 그분이 몇 시간씩 집중해서 그리고 가는 그림들을 기관에 방문한 많은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며 구매하려고 부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그림으로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기쁨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어서 매일 기관에 오는 것이 설레고 즐겁다고 표현하셨다. 이 말을 듣고 스웨덴의 통합적인 사회복지정책이 복지 대상자가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를 넘어 사회에서 기능하는 구성원으로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로 스웨덴이 사회복지에서 지방자치와 지역사회 내 협력관계를 중시하는 만큼 내가 인턴십을 한 기관은 지역 내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메오대학 병원의 정신과, 지역 장애인 관련 NGO기관들, 지역자치단위인 코뮌(Kommun) 등 지역 내 여러 자원들이 정신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대상자를 두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서로 정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책에서 공부한 내용이 진짜였어!'
인턴십을 하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었다. 다른 수업들을 통해 책에서 본 스웨덴의 사회복지정책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전달되고 있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자 배움의 희열이 두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인턴십 경험은 나에게 그동안의 이론 수업보다 훨씬 더 밀도 있게 스웨덴의 사회복지를 가르쳐준, 그리고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더 깊이 들어오는 기회를 준, 최고의 경험이 되어주었다.
커버 이미지: 온리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