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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Jul 02. 2020

바바라 크루거, 조명과 함께 빛났던 작품의 힘.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전시 이야기 - 서울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2편 -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유난히 SNS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전시가 있다. 임팩트 있는 작품이 있거나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 계획이 고안된 기획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요즘 2-30대 친구들이 즐겨 찾는 곳은 꼭 인증 사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된다더라. '인증샷 전시회'라는 말을 뉴스 기사로 접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남을 만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시회를 일컫는 말, SNS 인생샷 열풍을 타고, 전시회마다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늘고 있다.", 링크 내 YTN 뉴스 앵커의 말에서 발췌)

전시를 일종의 문화로 향유하는 계층의 소비 트렌드는 사진 속에 담겨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며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그 트렌드에 부합할 수 있는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인 <BARBARA KRUGER: FOREVER>를 개최했다. 이 전시를 방문한 후 떠오른 개인적인 견해는, "바바라 크루거"라는 작가의 작업이 가지는 힘과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 결과를 보여주는 기획자의 힘, 이 두 가지 모두를 보여주려 노력한 모습이 보여진다는 것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모든 전시에 해당되겠지만 작업이 가지는 생명력을 어떤 방법으로 또 어느 방식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보여줄지는 전적으로 기획자와 그 공간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바바라 크루거는 개념미술 작품을 창조하는 미국의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대체로 흑백이며 강렬한 붉은 색채와 선언적 텍스트가 함께 병치되어 있다. 

 그녀가 사용하는 서체는 한정적이다. Futura Bold Oblique 또는 Helvetica Ultra Condensed. 

두 상징적 폰트를 사용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짧지만 강렬한 메세지를 남긴다. 붉은 테두리 내의 흑백 이미지, 그 위에 절묘하게 올라간 문구로 사회의 부조리함과 성별, 계급, 욕망 등 다양한 관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이 전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그녀의 대규모 전시였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작가의 80년대 주요 작품을 시작으로 장소특정적 비닐 시트지 설치 작업 및 한글을 활용한 새 작품 발표 등이 전시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느껴졌다.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바바라크루거 전시의 

차별 포인트 셋 -


첫 번째, 조명의 사용.

전시장을 방문했을 많은 관람객이 나처럼 아래 사진 속 사인을 보며 궁금했을까? 처음에 이 사인을 멀리서 보고 라이트박스가 안에 있어서 참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와보니 부착된 조명은 아니었고 야광처럼 느껴지길래 특별한 페인트를 써서 같은 표면이지만 느낌이 다른가 싶었다. 작품 속 문구가 나를 바라보라고 명확히 읽으라 외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 작업을 사진으로만 봐도, 종사자라면 어떤 방식으로 조명을 썼는지 느껴지지 않을까?

처음 실물을 봤을 땐 마치 저 공간 그 자체에서 빛이 나는 듯 느껴졌을 정도였다.

We don't need another hero. 우리는 또 다른 영웅이 필요하지 않아.

그 어느 전시에서보다 관객을 향한 외침을 보여주는 데에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작품 앞에서 조명을 바라보며 서성이자, 전시장 안내원께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옳다구나! 하고 조명에 대해 여쭈어보았더니 매일 아침마다 작품 별로 조명을 셋팅해주시는 엔지니어가 따로 계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었구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전시장에서 관객들의 동선 안내 등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이 또한 얼마나 배울 점이 많았나. 작품의 우수성을 떠나 나는 종사자로서 이러한 방식의 조명 활용법을 처음 접한 후 뛰는 가슴이 오랜만이라 참 좋았다.

비상대피 안내도와 동선 안내표식에서 활용된 조명. 쉬이 지나치기 좋은 포인트지만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된다.

두 번째, 장소특정적 비닐 시트지 설치 작업 그 자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넓은 공간에 이렇게 큰 시트지 작업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한 전시가 또 있었는가?

작업 그 자체로 다른 전시와는 차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위력이 있었다.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걸 떠나 작품의 힘만으로도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파워 같은 것.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이 하는 작업이기에, 아쉬운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시트지 작업이 그렇듯이 이렇게 어긋나기도 하고 맞물리는 부분은 올라오기도 하고.

기술의 한계 상 어쩔 수 없는 걸 감안해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괜히 1픽셀이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엄청나게 커다란 시트지 인쇄기가 발명되어 더 큰 사이즈의 출력물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오차범위가 0점 대로 내려 앉은 작업을 볼 수 있게 될까? 괜한 기대를 해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세 번째, 어디에서나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포토존.

앞서 '인증샷 전시회'라는 단어를 언급했듯 요즘의 전시는 그냥 전시가 아니라 경험의 증거로서 활용되는 공간이 되었다. 나 역시 바바라 크루거 전시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돌아왔다.

다양한 문구들이 인증 사진 속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의 특성과 사람들의 기록 욕심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작업 앞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 친구들을 보며 전시가 가져야 하는 기능에 대해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다 지난 전시, 오랜 기억 속 좋은 방법을 겨우겨우 끄집어내는 듯 하지만..

적어두지 않으면 쉬이 잊혀질 게 아쉬워 오늘도 랜선 속 한 비트로 내 기록을 담아본다.


코로나로 인해 새 전시를 많이 보러 가진 못하는 요즈음, 과거의 좋은 전시를 둘러보며 큐레이터라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놓진 말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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