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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R Aug 16. 2018

하드보일드 스모킹 피플 랜드

흡연도 금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금연에 성공해서 5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마눌님과 결혼(결혼 5년 차) 하기 전 여자 친구였던 시절에는 담배를 피웠다. 여친은 흡연을 못마땅해했지만 그렇다고 담배를 끊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살짝 눈치만 주는 정도? 그 대신 자신과 만나고 있을 때에 피우지 말 것과 만났을 때 내게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취향과 사생활에 간섭하는 건가 싶어서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그 당시 어떻게든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20대에는 하루에 2갑을 피울 정도로 헤비 스모커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사람을 1:1로 대하는 분야로 일을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나에게서 나는 담배냄새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흡연자가 아니라면 분명히 흡연 후에도 남아있는 담배냄새가 불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흡연자를 만날 때 나 역시 그 냄새에 불쾌했었던 느낌을 경험한 이 후에 더 그랬던것 같다. 


그리고 주로 만나는 사람이 거래처 사람들이나 고객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져서 실제로 흡연량에 영향을 주는 바람에 와이프와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하루에 5개비 밑으로 피울 정도로 흡연량이 줄어있었다.


평소에 흡연욕구가 생겨도 한두 번씩 참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딱 두 가지 상황에서는 참는 게 무척 어려웠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실 때, 특히 친구들이나 친한 지인들을 만나서 마실 때 다들 자리에서 마시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서로 짠 것처럼 흡연자들끼리 슥~일어나 밖으로 나가 골목같은 곳으로 나가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은 왠지 소외되는거 같아 빠지기 싫었다.(지금은 괜찮지만 그때는 거기서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당구를 칠 때인데, 지금은 금연 당구장이 많아져서 비흡연자도 부담 없이 당구를 즐기는 곳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당구장은 흡연이 가능했었다. 비흡연자들에게는 괴로웠겠지만 흡연자들에게는 몇 안 되는 어른 남자들의 안식처였으며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슬아슬하게 당구대 모서리에 피우던 담배를 올려놓고 치던 모습은 아마 앞으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짜장면까지 시켜서 먹으면 존맛, 꿀잼이다. 불과 6,7년 전인데도 그랬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담배를 끊게 되는 일이 생겼다. 


친구들과 홍대에 있던 단골 지하 당구장에서 신나게 담배를 피우며 당구를 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여자 친구의 호출에 밤늦은 시간 여자 친구의 집 근처로 갔다.(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자 친구님이 부르면 그냥 가는 것이다)여자 친구의 집은 외대 근처에 있어서 강변북로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성수대교 북단쯤에서 동부간선도로로 빠져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아무튼 강변북로를 타고 가는데 당구장에서부터 몸에 배어 따라왔을 강한 담배냄새가 차 안에 진동했다. 담배냄새가 난다며 매의 눈으로 째려보는 여자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졌다. 순간 내가 왜 쫄지? 하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그 모습을 감당할만한 용기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담배냄새를 없애보려고 차의 앞뒷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10초? 20초? 쯤 지났을까? 깜짝놀람과 처량함, 그리고 큰 고통을 동시에 느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날이 한 겨울의 한파가 몰아치던 12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담배냄새를 빼야하니까 그대로 달리는데 세차게 불어오는 강변북로의 매서운 강바람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두 손가락 뼈 마디가 시리기 시작했고 뺨도 얼었는지 따끔거리고 귀도 그새 얼었는지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도저히 참기가 어려워서 창문을 다시 닫으려고 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강변북로의 매서운 강바람보다 더 무서운 여자 친구의 한기가 서린 눈빛이 헤드업 디스플레이처럼 운전석 앞 유리에 아른거렸다.


12월의 한가운데에서 강변북로를 달리며 매서운 강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Full로 가동되기 시작했고 몇 가지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1. 창문을 닫고 따듯하고 안전하게 운전해서 여자 친구를 만나 시원하게 욕을 먹고 뻔뻔하게 싹싹 빌어본다. 2. 남자로 태어나 한 번쯤은 이 정도 추위는 여자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뿐히 이겨낼 수 있다고 뇌를 세뇌시켜 계속 운전을 해서 결국 담배냄새를 환기시키고 벌벌 떨면서 당당하게 여자 친구를 만난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순간 말할 수 없이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으며 왜 이런 생각을 해야하며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인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는 아니고 너무 추워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내 인생이 불쌍해서 그런 건지 모를 콧물을 흘리며 내 인생에서 담배 피우는 게 어떤 의미길래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드나 싶었다. 내 인생의 의미와 담배를 함께 생각해본 적은 아마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결국 나는 2번을 택했고 여자 친구 집에 도착했을 때는 흡연의 욕구보다 더 간절한 삶의 욕구가 생겼기 때문에 그 날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금연을 하고 있다. 중간에 한두 번 정도 피운 적은 있지만 정말 특별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흡연으로 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나 혼자 믿고 있다). 아무튼 지금은 흡연욕구가 거의 없지만 초기에 흡연 욕구가 생길 때마다 한 겨울에 강변북로에서 창문 다 열고 운전하던 일이 떠올라서 한 여름에도 손가락 뼈마디가 시린 것 같아서 담배 생각을 떨쳐버리곤 했다. 그 대신에 담배를 끊었으니까 술은 더 마셔도 된다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음주에 더 힘을 쏟기도 했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담배 끊은 얘기를 왜 하게됐는지 장황하게 하다 보니까 깜빡 잊었었는데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9층이고 그 위에 옥상이자 흡연이 가능한 곳이다. 매일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항상 9층으로 올라오는 스모킹 피플들을 만나면서 옛 추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그늘도 없는(올라가 보지 않아서 진짜 그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옥상에서 흡연의 욕구를 채우는 사람들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싶었다. 점점 더 끊는 것보다 피우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웬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흡연자 타이틀을 유지하기 어렵겠구나...라고 측은 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용케 담배를 끊은 나도 대견한 것 같아서 두서없이 옛날이야기를 늘어놨다.


매일 9층에서 마주치는 스모킹 피플들이 한 여름 엘리베이터의 정체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잠시나마 원망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땡볕에 땀 흘리며 꿋꿋하게 흡연의 권리를 누리고 있을 이 땅의 모든 스모킹 피플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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