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커피로스터스 이승진 로스터
어느덧 세 번째 KBA 후보자 인터뷰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후보자는 180커피로스터스의 이승진 로스터입니다. 2013한국커피로스팅챔피언십(KCRC)의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커피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 있죠. 함께하는 팀원들도 남다릅니다. 로스팅, 에어로프레스, 사이폰 등 각종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죠. 한 명도 힘들다는 챔피언을 네 명이나 배출한 커피 명가. 그와 그의 팀원들에겐 무엇이 있었기에 이런 대단한 일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요? 이승진 로스터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KBA로부터 ‘추천되었다’라는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흔쾌히 응하셨나요?
추천받고 많이 좋았죠(웃음). 하지만 저보다는 다른 친구가 추천받았으면 했어요. 주성현 팀장인데, 저보다는 주 팀장이었으면, 싶었죠.
너무 겸손하신 걸까요?(하하) 아쉬움을 담아 주성현 팀장의 자랑을 좀 해주신다면?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동생 같은 사이예요. 제가 가장 많이 의지하는 친구이기도 하구요. 뭔가 결정하기 힘들 때마다 옆에서 힘이 돼요. 제가 갖지 못한 걸 갖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항상 부럽고 고마워요.
만약 다음에 다시 한번 추천받는다면 어떤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으신가요?
만약 추천을 받는다면 또 로스팅이었으면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로스팅뿐이라서요. 아직 초보 바리스타입니다(웃음).
왜 로스팅일까요? 로스팅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셨나요?
뭐랄까, 로스팅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해주는 거 같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계속 공부해야하고, 또 매번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게 로스팅인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지만요.
로스팅의 매력을 어필하시긴 했는데, 로스팅 챔피언 직후에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하셨어요. 심지어 파이널리스트에 오르셨는데, 그건 외도였나요?!(웃음)
도전입니다(웃음). 로스터는 바리스타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음지에 있잖아요. 로스팅만 해왔던 저한테 바리스타는 완전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그래서 대회 콘셉트도 ‘로스터가 바라본 바리스타’였어요. 안정적인 로스팅이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추출을 만들어낸다, 이런 접근이었죠.
특이한 콘셉트인데 설명 좀 해주시죠.
한 번은 오픈을 준비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세팅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게 참 어렵더라구요. 제가 로스팅한 커피였는데도 말이죠. 저도 이런데 납품처들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래서 로스팅 프로파일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쉽게 안정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요. 그래야 바리스타도 추출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안정적으로 커피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전에는 로스팅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바리스타와 그 이후까지 시야가 넓어진 셈이네요.
맞아요. 생두부터 추출까지 잘 맞물려야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 거죠. 그래도 바리스타, 어렵긴 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로스팅이에요(웃음).
많은 로스터가 로스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대체 어떤 부분에서 어려운 건가요?
쉽게 이야기하면 로스팅은 삼겹살 굽는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정해진 룰이 있는 건 아닌데 각자의 스타일이 있죠. 몇 번을 뒤집는지, 불의 세기는 어떤지... 결국에는 이런 나의 취향을 손님들과 타협해야 하는 건데, ‘맛있다’는 걸 어필하는 게 어려운 거죠. 저희는 납품을 많이 하다 보니까 세팅도 편해야 하고...
‘내가 마시는 커피’가 아니라서 그런 거군요. 상품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겠어요.
네. 그래서 재현성이 가장 중요해요. 일관성, 재현성이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예전에는 로스팅을 감각적으로 했는데 요즘은 측정 장치나 기록 장비가 발달해서 결과물을 쉽게 데이터화 할 수 있게 됐어요.
저도 감각적으로 많이 하던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주 팀장한테 배우고 있어요. 아직도 활용하는 게 미흡해요(웃음).
프로밧 UG15. 올드모델을 구입해 해외에서 리빌트(Rebuilt)했다. 하나의 로스터기에 두 개의 제조사 로고가 붙어 있는 게 인상적이다. 빈티지 모델을 리빌트(Rebuild)해 사용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적잖은 비용과 시간을 치러야 한다. 유지보수를 위해 감수해야 할 건 말할 것도 없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로스터기가 즐비한 요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냥 꼭 갖고 싶었어요' 웃음이 나오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생각을 바꾸는 로스팅’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자주 하셨는데, 상호에 있는 180이라는 숫자도 비슷한 의미인가요? 어떤 내용인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신다면?
맞아요. 매번 똑같은 프로파일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이 프로파일이 최고일 순 있지만 나중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틀에 갇힐 수도 있구요. 결국 상황에 따라 새로운 프로파일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퍼펙트한 맛은 이런 것이다, 라고 따로 정해놓진 않아요. 맛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에요.로스팅에서 일어날 수 있는 디펙트들이 있는데, 그것만 아니라면 한계점 내에서 다양하게 접근하려고 시도해요. 오늘보다 좀 더 발전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거죠.
커피를 하기 전에는 어떤 직업을 갖고 계셨나요? 또 커피를 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만족스러우신가요?
전에는 디자인을 했어요. 디자이너가 꿈이어서 열심히 일했는데, 하고 싶은 디자인을 못하는 게 디자이너의 삶이더라구요. 결국 디자인을 그만두고 커피를 하게 됐어요. 커피는 제가 하고 싶은 커피를 할 수 있더라구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야 하는 성격이라(웃음)...
그러면 지금 180커피 디자인은 직접 하시나요?
처음에는 제가 다했는데, 주성현 팀장이 합류하면서 나눠서 했죠.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이었어요(웃음). B급 디자인? 폰트도 정말 촌스럽고 충격적이었고... 그런데 매력있더라구요. 가독성이 좋아지니 정보 전달력도 높아지고, 실제로 반응도 더 좋았어요.
그때 생각했던 게, 그동안의 디자인은 제 기준의 디자인뿐이었구나 싶었어요. 잘못된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거죠. 아마 제가 계속 디자인을 잡고 있었다면 퇴물이 됐을 거예요(웃음). 지금은 저랑 팀원들이 그때그때 하고 있어요. 그래서 로고도 매번 바뀌고 있고(웃음)...
유연하시네요.
지금은 커피기업을 콘셉트로 삼았는데 어느 순간 또 바뀔 수도 있어요. 시즌제 같은 성격이랄까요.
지하에 있는 메인 로스터기가 고장 나면서 수리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계약한 기센 W30. 다행히 프로밧은 수리 가능했다. 180커피로스터스에는 이른바 '두 개의 심장'이 가동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있었던 커피 인생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 있었다면요?
저희 팀원들이 대회에서 우승한 일이에요. 매일 대회를 같이 준비하고 노력했는데, 4명이 챔피언이 됐어요. 너무 기뻤죠. 최고의 순간들이었죠(웃음). 고생한 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에요. 평소에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과정도 그렇고 결과도 좋아서 감사할 뿐이에요.
네 명의 챔피언을 배출한 커피 명가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비결이라고 해야 할까요? 좋은 결과가 있기까지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셨는지 궁금하네요. 자랑 좀 해주신다면?
명가라니 부끄럽네요(웃음). 저는 그 친구들을 옆에서 돕기만 했어요. 설거지도 하고, 콩도 볶고... 팀원들이 밤새우면서 열심히 준비한 거죠. 각자 하고 싶은 시연이나 방법을 존중했어요.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조금씩 발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성적이 좋다 보니 다른 친구들도 욕심내는데, 저는 ‘수상한 친구들처럼 준비할 거 아니면 대회 나가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대회는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가져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바리스타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해더라구요. ‘대회를 경험삼아 나간다고 하지 말라’.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해요.
챔피언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론 부담도 적잖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만약 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챔피언 수상을 안 받았을 거 같아요(웃음).
의외의 이야기인데요?
자유롭게 커피를 할 수 없더라구요. 어느 순간 보니까 커피 하는 사람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있더라구요. 커피인들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커피.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대부분 커피인이었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었죠. 커피를 시작한 것도 ‘내 커피’를 하고 싶어서 했던 거였는데... 그래서 그런 커피를 전부 다 빼버렸어요.
공격 아닌 공격을 당하기도 했는데,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저희 커피를 마시고 블로그에 후기를 올렸어요. ‘쓰레기통에 넣고 싶은 맛’이라고 하더라구요. 물론 그럴 수 있어요. 문제는 그날 새로 만든 블로그였다는 거죠. 거기에 저만 욕먹으면 되는데 팀원들 사진까지 올라가니... 이런 일들이 많아서 좀 힘들기도 했어요.
‘챔피언은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커피를 계속하겠습니다’, 이런 거군요.
네. 저희는 하고 싶은 커피를 하고 있어요.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스펙트럼 안에 들어가기만 하며 되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이 전제된다면 더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긴 해요. 티라미슈나 핫도그 같은 거요. 커피만 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더라구요. 전에는 ‘핫도그 맛있는 집’, ‘나초 맛있는 집’으로 유명하기도 했어요(웃음).
앞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계속 찾아보려고 해요. 그래야 좀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하게 될 커피.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원동력은 가족이에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부모님, 같이 즐겁게 일하고 있는 팀원들까지. 제 주변에 있는 사람이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있어서 제가 커피를 할 수 있고 즐겁기 때문이죠.
함께하는 팀원들이 중요한 건 당연하겠지만, 유난히 마음이 크신 거 같아요.
사실 결혼을 안 하려고 했어요. 책임지는 게 두려웠거든요. 그러다가 결혼을 했죠. 처음엔 아이 없이 우리끼리 잘살자, 이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애가 둘이죠(웃음). 팀원도 저 포함해서 4명이 시작했다가 이제는 14명이에요. 제가 이 14명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고, 제 선택 한 번에 14명 이상의 삶이 영향 받으니까 부담이 컸죠. 근데 이걸 잘 만들고 이끌어 간다면 더 많은 사람과 유대감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커피 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점점 사람이 중요해지더라구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종종 직원들한테 얘기해요. 나는 돈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유지만 하면 된다, 고... 그래서 돈을 못 벌어요(웃음).
언젠가 꼭 도달하고 싶은 ‘커피의 이상향’이 있다면?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보다는 맛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커피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한 잔의 커피 덕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커피를 하고 싶어요.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제 ‘커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 부탁드려요.
노력하고 즐길 수 있다면 누구보다 맛있고 즐거운 커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커피를 시작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면 아마 답은 정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 180커피로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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