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화 기억상실.
인천에 있는 어느 대학병원.
은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어디가 어떻게 된 건가요?
“현재 환자분은 뇌하수체 종양 소견이 보입니다.”
“종양이요?”
“네,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종양 상태나 크기에 따라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수술이요?”
“갱년기 여성의 경우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발병하는 경우가 있어요. 운이 좋으면 약물치료도 가능하긴 하지만 환자분의 상태는 크기가 작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해야 할 확률이 높습니다.”
은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은정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의자에 주저앉으려 하자 의사가 당황하며 다가갔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수술하면 완치는 되는거죠? 잘못되는 건 아니죠?”
“그게 사실, 성공 확률은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가...”
“낮은가요?”
“음,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안해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은정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뇌하수체 수술은 수술도구가 코를 통해서 진행되는데, 뇌하수체까지 도달하는 경로에 사람마다 다르고 복잡한 신경조직이 분포되어 있어서 수술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쪽 방면에는 경험이 많으니까요.”
“선생님.. 저희 엄마 꼭 좀 살려주세요.”
은정의 눈에는 간절함이 담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일주일 후 찬혁의 병실.
기명이는 여전히 찬혁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고, 불행중 다행으로 드디어 찬혁의 의식이 돌아왔다.
“찬혁아. 정신이 들어? 나 알아보겠어?”
“.....”
찬혁은 적잖이 놀란 표정과 함께 낯선 장소 때문에 주변을 탐색하는 듯 눈동자가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여기가 어디예요?"
“나야, 나! 기명이!”
“기명이?”
“그래. 네 친구 기명이.”
“.....”
순간 기명이는 찬혁의 표정과 말투에서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설마, 날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
“누구.. 신지..”
찬혁의 반응에 기명이는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제기랄, 역시 바뀔 수 없는 건가.'
“저... 누구신지 모르지만 제가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기명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를... 나를! 기억 못 해?”
기명이는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찬혁은 당황해하며 놀란 눈으로 기명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도대체 누구신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세요?”
병실에서 큰 소리가 나자 간호사가 부리나케 병실로 뛰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기명이는 자신을 말리는 간호사의 손을 뿌리치고 이성을 잃은 듯 다시 고함을 질렀다.
“너 이 새끼야! 이러려고 네 고집대로 그런 거야? 날 기억 못 한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 된다고요! 나가 계세요.”
기명이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병실문을 박차고 나와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하늘을 바라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이겁니까?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겁니까?”
잠시 동안 하늘을 응시하던 기명이는 소맷자락으로 거칠게 눈물을 닦아내며 허공에 대고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압니다! 알아요! 저 인간이 무슨 죄가 있는지.. 하지만, 저는 제 권한도 포기했는데 이건 너무 하잖아요!”
기명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바닥에 엎드린 기명이가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대신 그 시간만큼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기명이는 축 처진 몸을 간신히 일으킨 후 병실로 들어갔다. 어느새 당직 의사가 살펴보고 있었다.
“보호자분! 보호자분이 그렇게 흥분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기명이는 풀이 죽은 채 채근하는 의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 영 기억을 못 하는 건가요?”
의사는 진료차트와 찬혁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무겁게 말을 꺼냈다.
“지금 상태는 외상 성 단기 기억상실 증세로 보여 집니다.”
“기억 상실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금방 다시 돌아오기도 하니까요. 당분간 호전될 때까지 무리한 운동은 삼가 하도록 하시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잘 보살피셔야 합니다.”
“.....”
“아무튼 옆에서 잘 보살펴 주세요. 보호자분이 먼저 흥분하시거나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네.”
의사는 신신당부 후 자리를 떠났고, 찬혁은 두려운 눈빛으로 병실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았다.
“저기... 그쪽이 제 친구였어요? 제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친구죠. 교통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기명이는 목이 매여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찬혁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사고.. 그래서 여기 이 병원에 이렇게...”
“네. 일단 몸부터 추스르고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간호사를 부르세요.”
“네, 알겠어요.”
기명이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찬혁이 기명이를 불렀다.
“저기! 잠시만..”
“네?”
기명이가 돌아서서 바라보자 찬혁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도와줘서. 그리고...”
“.......”
“우리가 친구였다면, 다음엔 편하게 말을 놨으면 좋겠어요.”
기명이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찬혁의 얼굴을 보자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그래 그러자!”
기명은 자신의 대답을 듣고 미소 짓는 찬혁을 뒤로하고 병실을 나왔고, 그렇게 한참 동안을 병실 복도에 기대어 흐느껴 울었다.
인천 대학병원 은미의 병실.
안정을 되찾은 은미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들었다. 자신의 병도 걱정이지만 집 문제도 그렇고, 수술까지 하게 된다면 감당해야 할 경제적 문제 때문에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 집은 내가 어떡하든 해결해 볼 테니까. 엄마는 수술만 잘 받으면 돼.”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아저씨 연락은 없지?”
“연락 오겠지. 무소식이 희소식 이래잖아. 누군가 병원으로 데려갔겠지.”
“그래. 그렇게라도 됐으면 좋겠다. 아저씨한테 할 말이 있는데..”
“어쨌든, 의사 선생님이 이쪽 방면에는 경험도 많다고 하시니까 믿어보자.”
“그래 알았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됐어! 미안은.. 종양만 잘 제거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하니까,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 뭔데 말해 엄마.”
“옷장에 보면 겨울옷 칸에 무지개색 머플러가 있을 거야. 그것 좀 가져다줘.”
“머플러? 아직 겨울도 아닌데.. 추워?”
“아니 그냥.. 가져다줘.”
“알았어.”
이후 경매에 넘어간 집은 결국 전체 보증금의 반도 되지 못한 금액만 받은 상태에서 결국 월세를 알아봐야 했다. 그 돈으로는 조그만 원룸밖에 얻지 못했다. 집을 알아보고 이사하는 것까지 은정이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은정은 눈물이 나도록 서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또 그런대로 맞춰가고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 은미는 수술이 있기 전에 받아야 하는 각종 검사로 인해서 몸이 점점 약해져갔다. 일반적인 검사보다 힘들었던 검사는 칵테일 검사라는 것이었는데, 이 검사는 약물을(인슐린) 투여해서 강제로 혈당 수치를 끌어내린 후 저혈당 상태에서 뇌하수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지 관찰하는 검사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뭐든 강제로 반응하게 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하물며 그것이 약물에 의한 것이라면,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약물에 몸이 반응하여 저 혈당 상태에 이르게되니 일시적으로 시력이 떨어지거나, 어지럽고, 몸이 떨리며,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쇼크가 오기 바로 전 단계까지 내려갔을 때의 반응이었다. 약물로 인해서 몸의 반응을 해당하는 내부 장기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지 보는 것인데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서 적당한 타이밍에 당을 섭취하도록 비상용으로 준비한 과일주스와 초콜릿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느끼는 놀라운 경험까지 했다. 그렇게 어느덧 드디어 은미의 수술 날이 되었다.
꼬박 반나절이 걸리는 수술시간 동안, 수술실 밖에서는 은정이가 수술이 끝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수술이 끝난 후, 회복실로 이동하는 은미의 코에는 솜과 붕대가 붙어있었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수술 후 의사가 은정에게 수술 결과를 말해주는 내용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수술 부위가 생각보다 어려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꽤나 난해한 수술이었기에, 마취가 풀리고 경과를 지켜봐야 자세히 알 것 같다는 애매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악성 종양은 아니지만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말끝을 흐리자 순간 은정은 불안함을 느꼈다.
“일단 제거는 했습니다만, 음...”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그게, 종양이 자리한 위치가 너무 애매한 자리에 있다 보니..”
은정이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요. 잘 됐다는 거예요, 잘못됐다는 거예요?”
“신경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건 환자분이 깨어나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뭐라구요? 아니 도대체... 경험도 많으시고 또 저보고 걱정 말라고 하셨잖아요!”
은정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자, 당황한 의사가 은정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정확한 건 두고 봐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수술이 잘 됐어도 사람에 따라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냄새나 맛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혹시 수술 중에 신경을 다쳤다면, 시력이나 신체의 일부에 마비 증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수술 후유증이나 부작용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재활치료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은정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넋두리하듯이 혼잣말을 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 구요..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렇게 은정은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기까지 의사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병실에 누워있는 은미의 머리맡에는 무지개색 머플러가 곱게 접힌 채 놓여 있었고, 창밖으로는 짙어가는 회색빛 가을 하늘 아래 앙상한 나뭇가지 옆으로 낙엽들이 쓸쓸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한 달 후.
찬혁과 기명이는 어느덧 스산해진 초겨울 날씨의 평택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기명이는 아직 움직임이 불편해하는 찬혁을 보았다.
“의사가 아직은 안 된다고 해도 그렇게 억지로 퇴원하면 어떻게 해. 걷기는 괜찮아?”
“걸을 때마다 불편하긴 한데 괜찮아. 그런데 사고 전에 어디로 가던 중이었는지 알아?”
“궁금해?”
“응.. 그리고 뭔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이상해. 어딘가를 빨리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나온 거야.”
기명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구.. 기억나는 사람 없어?”
“글쎄... 혹시, 나 결혼했었어?”
“......”
“친구였으니까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미안해. 난 더 이상 말해줄 수 없어. 너 스스로 기억을 찾아야 해.”
“왜? 무엇 때문에 말해줄 수 없다는 거지?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정말 미안해.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너에게는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숙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친구라면서 실망인데?”
“인생이란 것이 대부분 사람들은 잘 못 느끼지만, 자신 스스로가 만든 문제를 해결 해야만 한다는 것을 모른 체 살아가지. 그냥 당연하게 하루하루가 주어진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무슨...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쉽게 말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까지... 별것 아니라고 생각들 하지만 결국 죗값을 치르게 되어있어.”
“그럼 내가 그렇게 살았다는 거야? 하..... 그런데 넌 말하는 게 무슨 도사처럼 말하네.”
“그것도 노코멘트. 언젠가 기억날 거야.”
“자꾸 이상한 말만 하네.”
“자, 이거나 받아!”
기명이가 가방을 내밀자 찬혁이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내 거야?"
“그래, 내가 간신히 챙겨뒀다. 그 가방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잘 가지고 있어.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찬혁이 가방을 열어서 내용물을 살펴보더니 투덜거리며 가방을 닫았다.
“별 내용물은 없구만.. 하여튼 알았어.”
“자, 그럼 어디로 갈 거야? 어디로 가고 싶어?”
“글쎄.. 모르겠어. 내가 북쪽으로 올라가던 길이었으니까.”
“인천 쪽으로 가봐.”
“그래 알았어. 너는? 같이 안가?”
“난 가볼 곳이 있어. 우린 다시 만날 거야. 몸조심하고 또 보자.”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헤어졌다. 찬혁은 인천으로 가기 위해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 찬혁은 가방을 품에 간직한 채 차 창밖을 바라보았다. 승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 갔다. 그중에 작별 인사를 나누는듯한 연인의 모습을 보게 되자, 찬혁은 머리가 지끈거리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러고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한 여인의 얼굴이 빠르게 스치듯 지나갔다. 너무도 빠른 순간에 지나간 얼굴이라 웃고 있다는 느낌이 전부였고,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더 이상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심장이 무척이나 빨리 뛰고 있다는것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얼굴임을 직감했다. 잠시 후 평택을 벗어난 버스는 서울을 향하여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