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퍼즐조각

by 글싸라기

2-6 화 기억의 퍼즐조각.

“엄마! 또 어딜 갔다가 오는 거야!”

은미가 창백해진 얼굴과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자 은정은 화가 치밀었다. 가뜩이나 완전히 회복이 안 된 몸 상태로 매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왜 이래 응? 나 속 터져서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엄마는 할 만큼 했다고!”

은미는 힘없는 걸음걸이로 창가에 다가가 기대어 섰다.

“나... 그 사람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꼭 해야 하는데...”

“그 인간한테 무슨 할 말이 남았는데. 그리고, 경찰도 못 찾는걸 엄마가 어떻게 찾는다고 매일 그러는 거냐고!”

“아니, 그 사람 날 찾아올 거야.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못 올 수도 있다면 내가 찾아야지. 너도 알잖아, 그 사람.. 내가 휴대폰이 고장 났을 때도, 내가 감기 걸렸을 때도,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달려와 줬어. 그런 사람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떠나지 않을거야.”

“그래 알아. 아저씨가 엄마한테만큼은 끔찍했다는 거 안다고! 그렇지만 지금은 몸을 먼저 생각해. 엄마가 나가서 돌아다닌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잖아!”

“뭐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안 그래도 오늘 아저씨랑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아 그래서 혹시 길을 잃어버렸거나...”

“그만! 그만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은정이가 오열하며 주저앉아서 몸부림을 치자 은미가 다독여 주었다.

“은정아.. 엄만 괜찮아.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그냥 이젠 좀 쉬어. 응? 제발 부탁이야.”

“그래 알았어. 조금만, 응? 조금만..”

“엄마..”

달빛이 쏟아지는 방안에는 은미가 그리운 눈으로 창밖 먼 하늘을 바라보았고, 은정이는 앉아서 무릎을 감싼 채 한참을 흐느꼈다.


부천 원종동 사거리.

찬혁이 원종 사거리에 도착하자 간석 오거리에서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래전에 살았던 고향처럼 이질감이 없었다. 파리바게뜨 앞, 올리브 영 앞 그리고, 족발 집과 치킨집이 몰려있는 술집 골목이 너무나 친근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해물탕 전문점 앞에 이르자 또다시 두통이 밀려왔고 어김없이 조각난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점점 더 심해지는 두통으로 인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두통때문에 비틀거리는 도중에도 세 사람의 모습은 점점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자 둘, 남자 하나...‘

지나가던 사람들은 비틀거리는 찬혁을 초저녁부터 만취한 주정뱅이로 생각했고, 도와주기보다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슬금슬금 피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걸어가다 곱창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두통은 사라지고 오히려 뚜렷한 기억이 영화 속 슬로비디오처럼 선명하게 보여지더니 정지 화면처럼 멈췄다.

“기명, 기명이.. 내 친구.. 기명이었어. 그리고..”

정지된 기억 속에 세 사람은 뭔가 고민이 있는 듯했지만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 옆에 앉아있는 여자의 얼굴은 안개에 가린 듯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도 기명이는 생각났어. 일단 됐다! 됐어!”

찬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어디선가 기명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야! 수호천사! 어딨어. 어디 있는 거야?”

큰 소리로 불러봤지만 기명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찾는것을 포기하고 곱창집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주인은 혼자 들어온 손님이 술잔 세 개를 주문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술상을 차렸다. 찬혁은 오래전 기억대로 자신이 앉은 옆으로 술잔을 하나씩 놓고 술잔에 소주를 가득 따른뒤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주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따.. 간만에 오셨네요 잉.”

찬혁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주인은 찬혁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동안 안 오셨소? 항상 같이 오던 친구랑 샥시는 와 같이 안 와 뿌고?”

“색시요?”

“그려.. 친구랑은 가끔슥 왔지만, 샥시랑은 자주 왔자네.”

“사장님. 저 그 여자 이름 아세요? 색시라는...”

“잉? 웜마.. 참말로, 신랑이 모르는 샥시 이름을 내가 우찌 안다요.”

“.......”

주인에게 기억에 도움이 되는 단서를 얻으리라 기대했다가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나가 기억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지라. 다른 커플이랑은 다르게 두 사람이 허벌나게 다정해서 기억하지라. 아이구 둘이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니께 나가 속으로 을매나 부러웠는디.. 허허허.”

주인의 대답에 실망하여 애꿎은소주를 연거푸 들이붓자 술집 사장이 깜짝 놀라며 술잔을 가로챘다.

“아따.. 이것이 뭔 일이래? 으찌 혼자 와서 그것도 깡 술을 이리 드신당가? 먼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소?”

“아, 아니요. 그냥..”

“이잉,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지라. 그렇다고 이리 허벌나게 죽어라 마셔뿌면 답이 없어브러. 암암.. 자, 혼자 오신 거 같응 께 나가 한잔 따라줄라니까 한잔 받으소.”

주인이 따라주는 술을 받고는 이내 설움이 복받쳤다. 친구 기명이와 아직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한 사람. 그리고 주인이 들려주는 행복했다던 그 시절이 사무치도록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찬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지자 주인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다 지나고 나면 별것 없지라.. 힘내시오 잉. 그리고 뭔 일인가는 모르것지만 서두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잉께. 이잉 암만!”

“네, 감사합니다.”

찬혁은 한동안 앞에 놓인 술잔에 번갈아가며 혼자 잔을 부딪치며 술잔을 비워냈다. 한 잔은 친구 기명이를 위해서, 또 한 잔은 아직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한 여자를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은 아쉽고 행복했던 지난 시간들을 위해서.. 그리고는 어느새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만취가 된 채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왔다. 주인은 멀어져 가는 찬혁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야~ 기명아! 그 친구 지금 나간다. 나가 엥간해선 이런 말 잘 안하는디, 오늘은 니가 와서 좀 도와줘야 쓰것다. 에잉 불쌍한것 쯧쯧.”

주인은 혀를 끌끌 차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간판 불이 꺼졌다.

찬혁은 얼마 가지 못하고 골목 구석에 기대어 먹은 것을 모두 뱉어내고 말았다. 그러자 누군가 다가와서 등을 두드렸다.

“아주 잘 하는 짓이다. 아직 몸도 다 낫지 않은 놈이 술까지 처마시고."

“어? 나타났다. 수호천사.”

“어쭈, 난 기억났나 보네?”

“그럼, 그럼. 반갑다 친구야. 야! 우리 어디 가서 한잔해야지.”

“그놈의 지랄은 기억이 돌아와도 여전히 풍년이네.”

그 순간 찬혁이 기명이를 와락 껴안았다.

“기명아. 나 좀 도와줘. 응? 그 사람 이름만이라도 알려줘 응?”

“안된다고 했잖아. 그러고 싶어도 못한다니까. 기억이 났으니 너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거 아니야.”

“그래 알아. 아는데, 이름만 어떻게 안돼?”

“야.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그렇게 되면 네가 더 힘들어진다니까 알아들어? 네 생명을 구하는 조건으로 내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하늘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하늘 탓하지 마. 네가 한 일이고 네가 마무리 짓는 거야. 그게 이치야. 윗분 지시만 아녔어도 지금 이 자리도...”

“알았다. 알았어.. 근데 누구 지시?”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자! 일어나 들어가서 좀 쉬어라. 이제라도 기억이 났다는 건 좋은 신호야. 곧 전부 기억이 날 거야.”

“정말 그렇게 될까?”

“그래! 사람들은 간혹 하늘이 무심하다고 하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엄청 이기적인 표현이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음 받았지 무심하진 않거든. 힘들 때만 늘어놓는 불평불만인 셈이지.”

“저런 저.. 기명이 맞네! 재수 없는 거 보니.. 하하.”

기명이에게 의지한 채 비틀거리는 찬혁이 골목 귀퉁이에 있는 모텔로 들어갔다. 이날 원종동 사거리의 주점 간판은 찬혁의 기억이 돌아온 것을 기념이라도 하는 듯, 아침까지 오색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깜박거리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다음날.

찬혁은 숙취로 인해서 몸부림치다가 눈을 떴다. 방안을 둘러보았지만 기명이는 없었다. 극심한 갈증 때문에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발끝까지 흘러 내려가는 모양을 지켜 보다가 그 상태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집 한 채가 떠올랐다. 새벽에 출근할 때 배웅해 주던 장면과,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다투던 모습들까지 조각조각 떠올랐다.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를 때면 두통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집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것 때문에 답답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무작정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자신과 연관이 있는 장소에 다가가게 되면 기억이 살아났던 것을 떠올리고 걷고 또 걸었다. 혹시라도 갑자기 기억이 살아날지 모르는 일이기에 집집마다 찬찬히 살펴보기도 하고, 가게 앞에서도 잠시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만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늦은 오후시간 쯤, 끼니라도 때울 겸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공원 벤치에 기대어 앉았다. 해가 떨어질 때쯤의 공원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 농구를 하는 사람,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런 일상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란 것이, 그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입에 물고 있는 빵조각을 목으로 넘기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하, 미쳤네.. 나 정말 미친놈이었네.”

찬혁은 끼니를 대신할 빵마저 삼키지 못한 채 모두 바닥에 뱉어 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꺽꺽대며 빵을 뱉어낸 후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서 고개를 들자, 연한 복숭아빛과 투명하게 밝은 붉은색이 어우러진 파스텔 톤의 석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그 상태로 몸이 굳어버렸다.

[곰돌이에 써진 글 있잖아, 내가 자기한테 해줄 수 있는 전부야. 내가 어떤 경우에 있더라도 약속은 지킬게]

찬혁은 부천을 떠나기 전, 아내에게 부탁했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혼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도 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는 온몸이 부르르 떨었다.

“내가.. 내가.. 그랬어. 내가 약속을 깬 거야. 실망 시키지 않겠다고, 노력 하겠다고 말했는데..그걸 내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서 공원을 휘 이 둘러보자, 이곳 공원에서 아내와 함께 걸었던 장면과 사소한 말싸움을 했던 장면까지 모두 기억이 났다. 그러고는 기억이 흐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모텔에서 샤워할 때 떠올랐던 집으로 가는 길이 기억났다. 찬혁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터벅터벅 집을 향해서 걸어갔다. 대패 삼겹살집 앞으로 지날 때는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쌈을 싸주는 모습이 떠올랐고, 재래시장 앞을 지나갈 때면 사이좋게 장을 본 후 장바구니가 무겁다고 징징거리며 장난치는 모습들까지 떠올랐다. 기억의 퍼즐조각이 맞춰 질 때마다 가슴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기억이 안내하는 끝자락에 도착하자 집 밖으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된장찌개 냄새는 기억을 자연스럽게 소환시켜 주는 촉매제로 안성맞춤이었다. 그 때문일까, 한참 동안 집 앞에 서서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찬혁은 시리도록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담벼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더 이상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던 바로 그때, 그토록 기억하고 싶었던 미소 짓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은, 은미.. 은미야.”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에서는 기억의 퍼즐 조각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기억이 났어. 드디어 기억이.. 다시 인천으로 가야 해.”

찬혁은 서둘러 눈물을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정거장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찬혁이 탄 버스가 부천을 떠난 뒤, 길건너 맞은편 버스 정거장에는 무지개색 머플러를 두른 여인이 공원 쪽으로 쓸쓸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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