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댄스 뮤직 그리고 락의 암흑기 시작.
8화 댄스 뮤직 그리고 락의 암흑기 시작.
계절이 바뀌고 있었고 유독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 같은 국방부 시계도 흘러가고 있었나 보다. 3년이라는 시간이 30년같이 느껴지고,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고통스러운 군악대의 기억을 꾸역꾸역 지우려고 애쓰면서 제대 복장을 갖춰 입으며 내무반 창문을 통하여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후임들은 군악대의 전통을 어거지로 실행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군악대 정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대고(군악대 타악기 파트에서 쓰이는 커다란 북) 아래로 제대자가 기어서 나가면 후임들이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동안 한이 맺힌 것을 잠시나마 그렇게라도 풀어내는 것이다.
12월 31일.... 35개월에서 하루의 에누리도 없이 군화 발로 꾹꾹 눌러서 개월 수를 만땅으로 채워서 제대라니... 그저 미적지근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
누군가 말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표현이 가슴속에 확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후임들이 잘 다려준 제대복에 깔끔하게 닦여진 군화를 신고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니 행정반 복도가 보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집합 소리에 잔뜩 긴장하며 이복도를 얼마나 분주하게 뛰어다녔던가. 또, 행사 당일에 고참들의 행사복과 악기를 들고 뛰어다니던 시간들이 계속 생각이 났다.
한 걸음씩 걸어나가니 살얼음이 끼어있는 연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구르고 뛰어다닌 이곳에서 시간이 빨리 흐르길 얼마나 고대했던가 눈물은 심할 정도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연병장에 모습을 보이니 익숙한 나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이나 지휘관이 등장하면 연주했던 그 소리가 나를 위해 연주되고 있었다. 5대 장성 중 하나가 병장이라는 말이 진짜였나 보다. 제대자를 위한 3군 장병들의 도열과 앞에 자리한 간부들과 중령 계급인 군악대장이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줄지어 서서 하나둘씩 악수로 그간의 노고와 감사함으로 인사를 건네고 커다란 대고앞에서니 드디어 미소가 지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박 병장님."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했다. 건강해라."
"네. 필승!"
선임이 된 맞후임에게 경례를 받고 대고 밑으로 기어갔고 예상한 발길질과 주먹다짐이 날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구타라기보다는 차라리 다독임에 가까웠고 대고 밑을 빠져나온 후 길게 도열한 장병들에게 눈물 어린 마지막 경례를 하였다.
"단결!!"
공군은 경례 구호가 필승이었으나 3군이 모인 부대 구호는 단결이었기에 나는 단결로 경례를 하였다. 뒤를 돌아서 걸어 나왔다.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근무자가 무거운 철문을 닫았다. 드디어 예비군이 되었고 다시 민간인이 되었다.
제대하면 후련할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왠지 아쉽고 허전함이 느껴졌다. 바람이 매섭게 불었고 쓸쓸한 발걸음으로 그렇게 군악대는 나에게 멀어져 갔다.
제대 후 바로 다음 달이 새해였고 시간은 군대와는 다르게 빨리 흐르고 있었지만 꼬질꼬질한 군인의 때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음악과 베이스를 어떻게 해나갈지의 고민이 주된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도라에몽에게 연락이 왔다.
"어이~박 병장. 어떻게 지내시나?"
"야 오랜만이네 얼굴 한번 봐야지 시간 되면 한잔하자."
"그래 오늘 어때? 우리 집으로 올래?"
"오늘? 그래 주소 불러봐 도착하면 음성 남길게."
"오케이..."
도라에몽을 만나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신촌을 지나갈 때였다. 악기 연주 소리보다 더 크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른 노랫말의 음악이 거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음악 속에서는 귀에 익숙한 디스토션(기타음을 바꿔주는 장치로서 락이나 메탈 음악에 자주 쓰이는 기타 이펙터)의 리프(일종의 주된 테마로서 락이나 메탈에는 대부분 이런 리프로부터 음악이 시작된다)가 들려온다.
그런 이유로 반갑다가도 알 수 없는 보컬의 중얼거림에 왠지 모를 반감으로 인하여 인상이 찌푸려진다.
"뭐야 저 거지 같은 음악은...."
60년대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락음악을 기초로 한 음악을 선호한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사운드였다. 알 수 없는 음악으로 인하여 언짢은 기분 때문에 담배를 어금니로 지근지근 씹으며 도라에몽 집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도라에몽이 틀어놓은 음악에서는 생소하긴 했지만 상쾌한 리프 사운드가 들리고 있었다.
"들어봤어? 조 새 트리아니.... 그리고 스티브 바이...."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훑어보며 음악을 들었다. 어마어마한 속주와 말초신경까지 녹일듯한 아밍( 기타 브릿지에 달려있는 기타 소도구를 암이라고 하며 이것으로 음을 왜곡시키는 테크닉을 아밍이라고 한다)과 마법사와 같은 기타 테크닉... 그렇게 몇 곡을 연달아 들어보다 나는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야 근데 계속 듣고 있자니 왠지 따분해지는데? 뭐랄까 너무도 완벽해서 처음에는 멋지고 신기하다가 점점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 감미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 같아."
나의 신랄한 비평에 도라에몽은 킬킬대며 웃는다.
"역시 블루스 락 베이스라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이건 어때?"
도라에몽은 플레이 데크에 다른 카세트테이프를 꽂아 넣고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순간 뭔가 불길하고도 기분 나쁜 가요가 내 귀를 파고든다. 아까 택시 안에서 들려온 길거리에 가득 찼던 음악이다.
"야 이거 도대체 무슨 음악이냐?
내가 따지듯 묻자 이 녀석도 심각한 표정과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으로 내 가슴에 비수 같은 말을 뱉어버리고 만다."이제는 락음악은 끝난 거 같다. 너 랩이라고 들어봤냐? 지금 외국에서도 그렇고 랩 이라는 것이 판을 친다. 락밴드들도 랩이 포함된 가사를 쓰고.... 전형적인 락이나 메탈은 이제.... 클래식 락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기분이 멍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렇게 믿었고 분명히 락의 전성시대는 올 것이라고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끝이라니....
"그리고 말이야..... 지금 이곡이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데, 리더가 누군지 알아? 바로 우리나라 메탈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던 사람이다. 그래서 중간에 메탈 리프가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만 이런 편곡이 락음악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메탈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줄 역할을 할지 아니면 이것을 이용만 한 꼴이 돼서 메탈이나 락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엔 후자라고 본다."
녀석의 말이 저주처럼 들렸다. 설마 그럴 일은 없다고 강하게 마음을 먹을수록 왠지 모를 배신감과 분함을 누를 수 없었다. 어린애처럼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옷은 헐렁하게 입고 춤을 추는 사이로 디스토션 리프가 출렁인다. 해맑게 웃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왜.... 왜.... 왜!!! 락음악과 메탈은 저런 대접을 못 받는 것이냐구! 나의 마음속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무능력한 아웃사이더일 뿐이었다.
도라에몽과 밖으로 나온 나는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지만 오히려 분함과 어처구니없음은 사그라지지 않았으며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길거리에 자기는 안다고 외치는 가사는 나를 더욱 자극했다. 그날 이후로 얼마 동안이나 락밴드의 암흑기가 이어질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