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월요일의 글쓰기

by Dahl Lee달리



교회에선 언제나 혼만 났다.

목사님은 나의 많은 면을 못마땅해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

책을 좋아하는 나

웃지 않는 나

새벽예배에 자주 빠지는 나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나

부흥회에서 시끄러운 찬양에 귀가 아파서 괴로워하는 나

목사님보다 엄마를 좋아하는 나



믿음이 없다고 지적하지는 않으셨다. 그저 성숙하지 못한 아이 같은 믿음이라고 하셨을 뿐.

목사님은 누군가의 잘못을 대놓고 지적하는 법은 거의 없었다. 다만 설교시간에 간접적으로 책망하시거나, 혹은 개별로 머리에 안수기도를 하실 때 큰 목소리로 ‘이 자녀의 성숙하지 못한 믿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시는 식이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고, 말면 말라는 식이셨는데, 나는 언제나 귀가 밝은 아이였다.

목사님의 책망의 기도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소금을 뒤집어쓴 애벌레처럼 괴로웠다.


글쓰기 모임에서 한얼님이 오늘 발제하실 차례인데, 오늘은 ‘믿음’이라는 주제를 던지셨다. 쿵. 갑자기 누가 얼음물을 끼얹은 느낌이었다.

그 교회를 떠난 지가 벌써 몇 년 째인데, ‘믿음’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생생히 울리는 목사님의 목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말씀 구절들이 목사님의 날카롭게 책망하는 목소리와 화난 얼굴에 레고 조각처럼 꽈악 맞춰져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쉽사리 꺼낼 수 없는 말들 뿐이다. 파도가 방파제를 때렸다 돌아가듯 가슴에서 올라온 말들이 목구멍을 타 넘지 못하고 다시 밀려들어간다.


엄마는 나보다 강하게 목사님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목사님은 철저했다. 엄마의 시간을 새벽부터 밤까지, 아니 어쩌면 엄마가 잠든 그 순간까지 전부 다 소유하고 싶어했다. 엄마의 머리카락 한올까지 다 말씀에, 정확히 말하면 목사님의 말씀에 복종하길 원했다. 그런 엄마를 두고, 그 교회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엄마 곁에서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어서 그 교회에 간 건데, 내가 엄마의 짐을 들려고 하면 목사님은 짐을 2배로 부풀려 내게 새로운 짐을 지우는 마법을 부렸다. 나랑 엄마는 교회를 이끄는 두 마리의 짐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엄마 때문에, 엄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 때문에 매일 슬펐다.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믿음.

엄마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생각한다.


목사님은 교회에 돈이 필요할 때마다, 강대상에서 액수를 말씀하시며 믿음 있는 자가 먼저 자진해서 헌금을 하라고 하셨다. 엄마와 나는 앞다투어 헌금을 했고, 목사님은 딸의 믿음이 엄마를 닮았다고 칭찬하셨다. 내가 목사님께 칭찬을 들을 때는 그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목사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헌금했다기 보단, 엄마가 그 돈을 먼저 낼까 봐 걱정했을 뿐이었는데.


목사님이 혼을 내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자기와 자신의 자녀들을 제외한 모든 신도들에게 가혹했다. 정상적인 범주의 정신적인 혹독함 그 이상일 때도 많았다. 육체의 한계까지 성도들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엄마는 목사님의 혹독한 채찍질이 개인적인 성품의 삐뚤어짐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온전한 뜻에 의한 것이라고 정말 믿었을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이면 아무거나 다 달게 받겠다는 순전한 믿음을 가지 셨던 것일까.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는 예민하고 유약한 내가 괴로워하는 걸 아시면서도, 그 괴로움이 돌고 돌아 복으로 오리라고 믿으셨던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눠 적이 없으니 엄마의 마음은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


그렇다면 내쪽은... 나는 하나님보단 엄마의 선의에 찬 마음을 믿었다. 엄마의 틀린 선택까지도 품고 따라갈 만큼 엄마의 마음을 믿었다. 동생은 일찌감치 엄마를 버렸지만, 나는 그랬다.

틀린 믿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내게 믿음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니까. 믿음 소망 사랑이 내 안에서는 다 같은 존재니까. 엄마를 사랑하기에 엄마의 믿음이 옳기를 소망했다. 자진해서 벌을 서는 엄마를 억지로 끄집어내기보다는 옆에서 같이 벌을 받고 싶었다. 내가 믿는 사랑은 그런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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