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나갈 때쯤부터 3년 정도 거의 매일, 아이토키에서 1대 1 영어 수업을 했다. 윌리엄이라는 캐나다 사람이 내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 삼촌들과 사촌들이 살고 있는 밴쿠버에 살고 있었다.
하루 1시간씩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3년. 누구 말을 그렇게 열심히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낯선 언어니 혹여나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더 집중했다.
윌리엄은 나랑 동갑에 백인 어머니와 원주민 아버지를 둔 혼혈. 얼굴은 완전 백인처럼 생겼다. 운동을 시작할 때도 윌리엄과 얘기를 많이 했다. 그 당시 수영을 처음 배웠는데 초급반 선생님이 arabic prince 같다고 했더니 엄청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영어책이나 한국책, 미드나 한드를 같이 보고 얘기를 했다. (그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 자막 없이 한국드라마 보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Stonner랑 Why fish don't exist를 그와 함께 완독 했고 Joker랑 나의 해방일지도 그와 같이 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는 bojack horseman인데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니악하고 우울한 만화라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도 나도 서로 놀랐다.
그때는 한국어로 글을 전혀 안 쓰고 영어로만 글을 썼고, 윌리엄이랑 내가 쓴 글을 같이 고치며 얘기를 많이 나눴다. 윌리엄은 좋은 독자였다. 브런치에도 올려놓은 쇼핑몰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는 특히 윌리엄이 좋아했던 스토리다.
비슷한 점이 많아서였을까,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세상에 윌리엄같이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느꼈다. 우리 아빠가 어려서부터 자긴 오래 못 살 거라고 하셨다니, 자기 아빠도 그랬다며 복잡한 가정사를 얘기해 줬다. 그의 아버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윌리엄의 엄마와 재혼한 거라 이복누나들과의 나이차이가 엄청났다. 윌리엄의 엄마는 우리 엄마처럼 초등 교사셨고, 우린 둘 다 엄마가 선생님인 학교엘 다녔다. 나는 글쓰기로, 그는 프로그래밍으로 투잡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했다.
그는 캐나다 북쪽의 유콘 출신이었다. 그가어릴 적에 얼마나 추웠는지 얘기할 때면 소설 속 얘기를 듣는 것처럼 신기했다. 풍족하지 않은 가정환경 탓일까, 그는 갖가지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다. 영국에서 술집에서도 일해보고 독일에서도 영어를 가르쳐봤다고. 그는 유럽에서 살던 시절을 최악으로 기억했는데, 한국사람들에 비해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독일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꼈어서, 의외였다. 그가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 내 좁은 세상을 벗어나 멀리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윌리엄은 이혼남이었고, 형이 있었는데 한국여자랑 결혼을 해서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 윌리엄도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했었는데, 왠지 한국여자랑 결혼하고 이혼한 것 같았다. 일부러 그걸 물어보진 않았다. 결혼생활이 끔찍했던 것 같았다. 나에게 언젠가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끝에는 어떻게 증오로 변할 수 있는지 물었었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결혼관계는 결과적으로 자신을 해치게 된다고 말했는데, 극단적인 표현에 많이 놀랐었던 것이 기억난다.
요새 브레이킹 배드를 보고 있다. 당시에 그가 제일 좋아하던 tv show로 나에게 보라고 권했었는데 잔인하다고 내가 끝까지 보길 거부했었다. 지금에서야 그걸 보며 윌리엄 생각을 자주 한다.
윌리엄과 수업을 그만두고, 나는 본격적으로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울메이트란 단어를 들으면 그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는 내 첫 번째 독자였기도 했다. 언젠가 책이 나오면 윌리엄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도 프로그래머의 꿈을 이루었길 바란다.